The Miracle Survivor of the Gangwon Wildfire: Father’s Nogari Stick

A miraculous survivor of the Gangwon wildfire! <Father’s Nogari. Nogari Stick> Bringing hope through this special dried fish snack.


The Miracle Survivor of the Gangwon Wildfire: Father’s Nogari Stick 노가리닷컴(어물전속초처자)

A miraculous survivor of the Gangwon wildfire! <Father’s Nogari. Nogari Stick> Bringing hope through this special dried fish snack.

The Miracle Survivor of the Gangwon Wildfire: Father’s Nogari Stick
US 7
1300 KRW

명태를 시원한 바람에

3일동안 말리면 어떻게 되게요?


아버지의 노가리. 노가리스틱

정답!
노가리스이 됩니다.


'저게 황태여, 북어여?'
이런 생각 하셨쥬? ㅎㅎ  황태채, 북어채는 많이 보셨는디 노가리스틱은 생소한가봐유.



아무래도 노가리스틱은 울 아버지만 만드나봐유.
근디 만들기만 하셨나벼. 아는 사람이 읎네! 엄청 맛있는 건데...  





 노가리스틱 정체가 뭐냐?

1. 원재료는 명태

노가리스틱은 명태를 말린 거에유. 명태를 말렸으니 생긴 건 북어채, 황태채랑 비슷해유.

2. 3일간 냉풍에 말려 먹기좋게 손질했다.

냉풍건조실에서 무려 3일동안 시원한 바람으로 말려서 만들어유.  
그럼 급방 마르겄슈? 안 마르겄쥬?  전기요금도 많이 나오고,  말리다 상하기도 해유.

울 아부지 자랑 좀 해야겄슈~
요즘처럼 더울 때 생선 내 놓으면 어떻게 되유? 하루만 둬도 상하쥬?. 근디 3일동안 그렇게 말린다고 생각해봐유. 그래서 원래 여름엔 반건조 노가리 안했슈. 울 아버지가 이 시스템 만들기 전까진. 긍께 3일동안 무사히 말리는 것이  고도의 기술력이다~  이거쥬~ 자랑할만 하쥬?

또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야하니 인건비도 만만찮아유.  그래서 잘 안하나봐유. 


반건조노가리를 시원한 바람에 말려 딱딱해지면 손으로 쪽쪽 찢은 게 ,노가리스틱이유.


이제 아셨쥬?


사실 이거 만든 울 아부지 자랑하고 싶어서 와디즈 했슈~ 근디 왠 충청도 사투리냐구유?
울 아부지 인생 반 뚝 잘라서 1막은 충청도 2막은 속초에서 사셨거든유. (지두 거서 살다왔슈)





 노가리스틱 어떻게 먹지?

1.  날로 먹기

이게 생긴 건 황탠가, 북언가 아리까리한데 먹어보면 전혀 달라유~
갸들은 푸석푸석하고 부스스하쥬? 그래서 구워 먹잖유. 바삭하게 먹을라고.
니맛도 내맛도 없어서 간장+마요+청양고추 팍팍 해서  찍어먹잖유.
근디 이 노가리스틱은유, 쫄깃한 반건조노가리 말린 거라 푸석푸석 그런 거 전혀 없슈.
그냥 꺼내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면 끝이여.

울아부지가 엄청 황금비율로 밑간을 했슈. 단짠단짠 비율이 딸인 내가 봐도 신기햐~
씹을수록 고소하고 찰진 맛이 나서 걍 먹음 되유.
이걸로 북어국 끓여야 맛나다는 사람도 많아유. 

2. 에프(에어프라이어) 에 굽기

요즘 필수품 에프. 그거 하나 있음 넘어가유 아주 그냥.
기호에 따라 3~4분 정도 돌리면 되유. 그럼 과자처럼 바삭바삭 해져유. 수분 날라가서 금방 딱딱해지니께 한꺼번에 많이 돌리지 마세유~

라이어에 구우믄 바삭바삭해져유. 금방 딱딱해지니께 먹을만큼만 돌려야 되유~

3. 요리해먹기 (노가리무침, 노가리국(황태국), 노가리찌개. 등등)



 리워드 어떻게 구성되나?

1. 노가리스틱 L

좀 길쥬?  왜 이름이 스틱인지 알겄쥬?  
포장은 제가 했슈. 스티커도 만들고. 울아부지 공장에선 기냥 막 팔드라구유. 박스떼기로ㅠ 워쩌유. 부족하지만 제가 손가락 좀 썼쥬.  (전문 디자이너는 아닝께 촌시러워도 이해하세유~)


2. 노가리스틱 s

이가 시원찮다. 자르는 게 거시기하다.
그런 분은 찌끄만 거 드시면 되유. 제가 다 잘라놨슈^^ (저두 교정해서 이게 더 편하드라구유)

얘는 기럭지가 좀 짧쥬?.
배고플 때 먹기 좋다고 갖고 다니며 먹는다고 인증샷 보내주고 그러는디, 한입에 안 들어가니까 눈치보다가 남들 안볼 때 사샤샥 먹는다고 그러대유. 지가 가만 있을 수 있겄슈?
안 먹은 척 하면서 먹으라고 잘랐슈. 손가락 한두마디 길이니까 한입에 쏙 넣고 '누가 노가리를 먹는대~~? ' 하고 있음 되유. (지퍼를 꼭 닫아야 완전범죄유. 안 그럼 냄시나~)
양복 안주머니에 딱 들어가든디...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홀랑홀랑 까먹기 좋겄쥬?

공장 고모들이 자르기 싫다고 해서 진짜로  제가 직접 잘라유.
한참 하다보면 엄지손가락이 뽀사질 것 같이 아파유ㅠ
작두 있음 좋은디. 펀딩 잘 되면 작두 하나 마련해야겠슈~ㅎㅎ


 본격 간단 리워드 구성 알아보기!


 언제 먹으면 좋을까?


                                                         

지금까지 이런 노가리는 없었다
이것은 '안주'인가 '간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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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4일 저녁.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해 온 산을 뒤엎었습니다. 

하룻밤만에 30여년간 일궈온 아버지의 공장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룻밤만에 우리 가족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4월4일 밤10시 48분.
부모님은 차키 하나만 들고 급하게 대피하셨습니다. 이때만 해도 우리 공장이 최대피해자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30시간만에 사라진 아버지의 30년



하루밤만에 30여년간 일궈온 아버지의 공장이 모두 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산불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불을 끄려는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재 지역은 접근금지가 떨어져 가까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공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리저리 춤추는 불길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공장이 어떤지 가서 볼 수도 없는 상태로 초조함 속에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식같은 공장을 지켜줄 수도 

불 타는 것을 지켜볼 수도 없었습니다.


큰딸인 저는 아버지의 안위를 묻는 전화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밤새 공장과 가까운 곳에서 접근금지가 풀리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아버지가 혹시나  불길에 휩싸이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그저 부모님이 무사하시기만을 기도하며 계속 연락해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화마 속에서 저라는 인간은 너무도 무기력하고 작은 존재였습니다.  


' 설마 우리 공장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라구... '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공장에서 자라왔기에 공장이 없는 삶이라든가 공장이 없어진다는 상상은 할 수 없습니다.
노가리 공장은 몸에 밴 노가리 냄새 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상이었습니다.
불꽃이 튀어 좀 탈 수는 있어도 남아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뭐라도 남아 있을 거라고.. 냉동창고니까 쉽게 타버리진 않을 거라고'

... 바보 같았죠.


화재 이틀뒤 한일건업. 아직도 남아있는 불씨가 타느라 연기가 가득했다. 포크레인과 소방차가
 잔해더미를 들추고 잔불을 제거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은 노가리 굽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날이 밝아 내려간 속초 집은 적막했습니다.
대피명령으로 집에서 나와 뜬눈으로 밤을 지샌 부모님은 수척해 보였습니다.
못난 딸은 그제서야 부모님 머리가 하얗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두분 모두 열정적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었기에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인터넷도 어려워하시는 연세었지..'

우리 가족은 울지도 웃지도 않았습니다.
담담한 얼굴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떻게 버텨야할지를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너무나 큰 일을 당한 터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희망이 있을 거라고 다 잘될 거라고 속으로 몇번을 되뇌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살 것이기에...


'내년엔 꼭 파티를 해 드려야겠다!'

저는 이렇게 다짐하며 꾸역꾸역 밥을 먹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기 실속부터 챙겨. 사업은 망해도 사장은 안 망한다잖아'

흔히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이니까 이런 실속쯤은 따로 챙겨놓으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그런 사장님은 되지 못하는 분이셨나 봅니다.
세금 잘 낸다고 모범납세자상을 받아온다며 '참 답답한 양반'이라고 어머니가 하소연하신 적이 있습니다. 빚 갚을 생각은 안하고 그 돈으로 세금 내고 있다고. 으레 소기업이 그렇듯 친척들 돈을 빌려 사업체 만들고 하잖아요. 어머니가 그 일로 맘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상이나 감사패 받아오면 꼭 한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저에게 자랑을 하셨었어요. 상 받으셨다고.
매출 속이지 않고 세금 잘 낸다고 나라에서 상 줬다고. 활짝 웃으시면서.
아버지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들 앞에서 떳떳한 아버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세금내는 당신을 자랑스러워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친척들을 돕고 이웃을 도우며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TV와 노래방기기를 들이고, 해마다 마을잔치를 열어드리는 것이 즐거움인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더 큰 일 하시라고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산불이 나고 이틀 후, 시청공무원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청에서 피해규모 조사를 하는데 곽사장은 너무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이라 나중에 이리저리 깎이면 몇푼 받지도 못할까봐 걱정된다. 그러니 쓸 수 있는 건 연필한자루까지 다 찾아서 쓰라'는 당부전화였습니다. 

산불이 아니면 몰랐을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왜 산불이 이렇게 크게 번졌을까?

① 속초는 바람이 유난히 센 곳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귀신소리 같죠?  봄에도 한겨울같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 설악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형이라 그런지 바람의 방향도 예측할 수 없고, 사람을 붕 뜨게  할 정도로 세게 불 때도 많아요.
불이 났던 4월 4일은 차가 밀려날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불꽃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녀 진화도 힘들고 피해도 커진 거라고 합니다. 

② 4월의 속초는 매우 건조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봄마다 단수가 되어 살수차가 물을 공급해주러 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생수가 없던지라 봄에는 물을 아끼며 살아야 했지요. 지금은 저수지 덕에 단수되지는 않지만 건조한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속초고성은 봄에 산불이 자주 납니다. 이번엔 바람까지 더해져 그 피해가 유독 컸던 것입니다.


 다시 일어섭니다. 반.드.시.

이번 산불로 우리 가족이 시련을 대하는 자세를 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실의에 빠져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뭘 해야할지, 무엇부터 해야할지' 를 고민하는 모습이었습니다.울거나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가족이 한마음이라면 더 빨리 일어날테니까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다시 봤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으키겠다.
공장을 지금보다 더 크게 키우겠다.

'아직 무너질 때가 아니다. 나에겐 할 일이 있다.
내 능력이 부족하면 키워서라도 해내야할 일이 있다.
하늘은 크게 쓸 사람에게 큰 시련을 준다고 한다.
혼신을 다하고 일어나 더 큰 일을 하라고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

지금도 제 자신이 약해질 때면 저는 이렇게 되뇌입니다. 지금이 바로 성장의 시기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저를 꼭 안아주시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모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올해 안에 다시 일어선다. 반드시!!



 아버지를 도울 방법을 찾자

공장을 재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날 이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연극을 하던 제가 할 줄 아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성공의 방식이 있겠으나 제가 아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합니다. 

기록을 수집하기로 했습니다. 공장이 재건되면 역사로 남을 기록을..


우선 공장의 피해 기록을 남기려 불탄공장을 구석구석 다니며 영상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불씨가 남아 타고 있던 공장에 들어가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 무섭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저를 공장 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 고성산불의 기록 >



재건했을 때를 대비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먼훗날 돌아보며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죽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도록.
관련한 영상이나 신문 등을 모았습니다.

당시 느낌에 대한 기록도 남겼습니다. < 노가리닷컴 블로그 >
영상과 사진을 볼때마다 목덜미를 누군가 움켜쥐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화재진압에 힘써주신 소방관계자 및 군인장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는 아침 저녁 인사만 할 정도로 바쁘신 분이었습니다.
라이온스클럽, 충청도도민회, 삼도도민회, 강원포럼 등등 거의 매일 모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집에 가면 아침 저녁 인사만 할 정도로 바쁘십니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가 바쁘신 이유는

 이기 때문입니다.



30시간만에 30년을 앗아간 고성산불.
3개월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인흥리. 산불의 한 가운데에 있던 한일건업.
창고만이라도 남아주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모두 불탔습니다.
대지 2000평에 1200여평 건물이 형편없이 무너졌습니다. 
30여년을 고생해 일군 아버지의 모든 것이 30시간만에 사라졌습니다.



사실 불이 나기 전에도 공장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노가리 원재료인 명태는 러시아에서 전량 수입됩니다.
그런데 12월부터 명태가 수입되지 않아 조업을 못 했습니다. 
명태가 없다고 노가리공장에서 갑자기 오징어를 말릴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게 석달여를 보내고 3월부터 다시 수입되자 이를 만회하려고 대출을 받아 명태를 많이 사 두었었는데.... 이제 겨우 말려서 냉동창고에 넣어두었었는데... 텅빈 창고에 노가리를 채워넣자마자 예상치 못한 산불이 발생하는 바람에 이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노가리를 창고에서 다시 꺼내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태워버렸습니다


조업하려고 꺼내두었으나 새카맣게 타버린 명태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재 몇 시간 전에 다른 냉동 창고로 옮겨놓은  노가리스틱이 몇 박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침 제게 보내기 위해 따로 둔 것이었습니다.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기적이었습니다.
불나기 두시간 전에 다른 창고로 옮겨져 산불을 피해 살아남은 기적의 노가리.
그 무시무시한 불에 닿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완전 건조상태인 노가리스틱이 남아있었습니다.
반건조인 명장노가리였다면.. 황망한 가운데 상해서 버려질 수도 있는데..
실온에서도 보관가능한 노가리스틱이라 다행입니다.


노가리스틱, 

기적적으로 남아줘서 고마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노가리스틱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노가리스틱은 산불 사고 이전에도 와디즈에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신있고 사랑하는 노가리거든요. 남아있는 이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머리속에는 와디즈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와디즈를 통해 노가리스틱을 전하기로 합니다.
WHY?


WHY WADIZ.1  
아버지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노가리공장은 아버지가 일생을 바쳐 만든 곳입니다.

1987년 봄, 부모님은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향을 등지고 속초로 이주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고모부의 공장에서 일하며 기계에 여기저기 베이고 다치는 것은 기본이고, 동상에, 용접으로 눈을 다치기도 하면서 조금씩 돈을 모아 1992년 한일건업을 세웠습니다. 당시에 유치원생인 저와 동생도 부모님을 돕겠다고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카메라 살 여유도 없어 사진 한장 남아있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1992년 가을. 지금은 횟집이 들어선 속초시 장사항의 벽돌 공장 옆 부지에 한일건업이 지어졌습니다. 여름 내내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먹줄을 튕기고, 시멘트를 얹고 벽돌을 쌓고, 그 벽에 시멘트를 바르고  지붕을 씌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서 구경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갖다 드리며 놀았습니다. 하나하나 공들여 만든 덕분인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2년만에 다른 공장으로 옮깁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큰 공장으로 옮기다 현재의 공장을 인수하고, 연매출 50억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온 지난 30여년. 

산불나기전 한일건업 전경

이 모든 것들이 단 하룻밤만에 허망하게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빠, 이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꼭 재기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산불 연기와 그을음을  너무 많이 마셔 갈라진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천갈래 만갈래 갈라졌을 그 마음도 기억합니다.
밤새 통행금지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불구덩이 주변에 계셨던 아버지, 그리고 이제는 보상금 문제로 힘겨운 싸움을 하며, 한편으론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셔야 하는 아버지께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드리고 싶습니다. 


WHY WADIZ.2  
이 기적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처음 공장에 갔을 땐 모든 것이 까만 재가 되어버린 모습이 무서워 제대로 서있기 조차 힘들었습니다. 애써 의연한 척 했지만 아직도 남아있던 불길과 쌓아둔 모양 그대로 까맣게 되어버린 명태들을 보면서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불 나기 두어시간 전에 다른 곳에 옮겨진 노가리스틱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습니다.




노가리스틱이 기적의 노가리가 되어 이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기적의 노가리.
공장을 모두 태워버린 산불을 미리 피해 살아남은 기적의 노가리.
우리 가족에게 다시 일어설 희망을 주는 기적의 노가리.
너무너무 맛있어서 눈깜짝하면 사라져버리는 기적의 노가리.


감사의 마음,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기적의 노가리를 보내드립니다.

이제 산불 속에 살아남은 기적의 노가리
노가리스틱이 여러분의 기적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는 기적의 노가리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해주는 기적의 노가리

자신을 응원하는 메세지를 담아 내게 선물하는 기적의 노가리

고마운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기적의 노가리



기적의 메세지를 담아 그 마음을 대신 전해 줄 기적의 노가리가 되겠습니다.


WHY WADIZ.3  
와디즈여야 전할 수 있습니다.


오픈마켓이나 쇼핑몰은 기적의 노가리가 갖는 의미를 전달하기 부족합니다. 지금까지의 구구절절한 사연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와디즈를 통해서 우리 아버지 노가리 맛있다. 이런 노가리스틱이란 게 있다는 것만 전하려는 게 아닙니다.  전하고픈 메세지가 있습니다. 

저는 고성산불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속초,고성을 방문하면 까맣게 탄 채 여름을 맞이하는 산을 보시게 될 겁니다.
다른 곳에 가는 분은 전혀 산불을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얼마나 큰 불이 넘실거렸는지는.
자연재해도 아니고 인재를 그렇게 넘겨버릴 수는 없습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순식간에 빼앗겨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업을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겪어온 와디즈는 단순히 교환가치만이 오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와디즈는 더 좋은 물건을 만들어 전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꿈과 비전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서포터와 함께 하는 곳입니다.


와디즈는 제작자의 꿈과 비전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서포터
와 함께 하는 곳

 

수요와 공급으로 만나는 마트가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정이 있고 소통이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와디즈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와디즈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는 걱정스레 말합니다. 


'요즘 와디즈 하기 힘들건데?'

'쉽지 않아. 거기서 성공하기.'


네. 압니다. 막상 시작해보니 해야할 것이 많습니다.  
협력업체를 끼고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도 들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면 제가 와디즈를 잘못 봤겠지요.
그건 그 나름의 공부가 될 것입니다. 되지 않는다고 해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돈을 바라고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남은 노가리스틱은 고작 100kg 남짓입니다.
지금도 저희 공장이 언제 다시 가동되는 날이 오기만을 목을 빼고 기다리는 분들 많습니다.
쉽게 팔아먹을 생각이라면  그분들께 팔았겠죠. 우리 노가리 맛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들한테 우리집 좀 도와달라고 하며 팔았겠죠. 


그런데 왜 저는 굳이 와디즈에 하고 있을까요?

지금까지 제 스토리를 지켜본 여러분이라면 답을 아시겠지요^^



 노가리스틱 누가 만들었나?


1. 한일건업(제조)

산불 나기 전 한일건업 (강원도 고성군 인흥리 소재)

노가리스틱은 강원도 고성에 소재한 한일건업이라는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한일건업은  저희 아버지가 1992년 10월 속초시 장사항에서 시작한  노가리 건조 전문 기업입니다.
아버지 이전의  노가리는 딱딱하고 빼빼 마른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도 여름에는 건조 중에 쉽게 상하는 바람에 조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1년 내내 노가리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반건조 노가리의 생명인 쫄깃한 육질을 살릴 수 있는  저온건조공법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특허권을 건조실설치업자에게 주어, 보다 많은 공장에서 저온건조공법을 택해 딱딱한 노가리가 아닌 반건조 노가리를 대량생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기술특허가 있었다면 지금쯤 더 많은 돈을 버셨을텐데. 더불어 잘살자는 아버지의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덕분에 많은 곳이 저온건조, 냉풍건조를 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속초시 대포 농공단지에 작은 공장을 빌려 다시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1/4규모로 축소되고 여전히 불에 취약한 자재를 쓰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어쨌든 다시 시작할 겁니다!

공장이 무사히 잘 지어지기를 기원해주세요!


2. 노가리닷컴 (온라인판매, 택배발송)

노가리닷컴은 2017년 11월 아버지의 권유로 만든 가게입니다.
온라인마케팅에 익숙하지 않으신 아버지께서 어느날 제게 '인터넷으로 우리집 노가리 한번 팔아봐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던 저는 단지 인터넷으로 물건을 자주 산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판매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마케팅 지식이 전무한 탓에 각종 교육기관을 찾아 다니며 스마트스토어, 인스타 마케팅, 블로그 마케팅 등을 배우고 노가리를 판매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가난한 연극배우에서 구제해 사업가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복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노가리 온라인판매, 디자인, 택배발송 담당자 (+연극도 하고 있음) 

"연극배우가, 그것도 여자가 무슨 노가리를 팔아?"

한때 이런 질문 많이 받았습니다. 노가리를 왜 파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글쎄요.
부모님이 사과농장을 하시면 자식들이 사과를 팔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제가 여자고 판매하는 것이 노가리이다 보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스토어를 소재로 유튜브를 하시는 분은 다른 건 다 믿어도 제가 여자라는 건 못 믿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일까요? 저 여자 맞는데..

요즘 (노가리 파는) 직업상 노가리 관련한 키워드를 자주 검색하는데 처음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노가리골목이었다가 지금은 힙지로라고 불리더군요. 제 삶의 8할을 노가리와 함께 했는데, 지금처럼 노가리가 붐이었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처음 노가리 팔 때만 해도, 왠 노가리? , 이런 소릴 들었으니까요. ㅎㅎ 지금은  인스타 성지가 되었어요. 저로선 반가운 일이죠.

다만  울 아버지 노가리만큼 맛난 것은 없었다 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초큼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아버지는 도매시장이나 음식점 등을 대상으로 도매거래만 하시지 소매로 판매하지는 않으시거든요. 변화하는 온라인마켓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서, 아니 최소한 자식인 제가 이재에 밝아서 제대로 기반을 깔아두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왕이면 맛있는 거 드시면 좋잖아요.

제가 이렇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술 작 먹는 연극배우들 덕분입니다. 저는 술을 잘 안 먹는 사람이었고, 저희 집은 노가리를 안주로 먹지 않았기에 제 머리속에서 '노가리=술안주'라는 공식이 없었어요. 어느날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노가리를  혹시나 싶어 연습실에 가져간 적이 있었습니다.  안 먹으면 도로 갖고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져갔는데 왠걸, 그날 '왜 노가리를 이것만 갖고 왔냐'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거 진짜 노가리 맞냐', '내가 아는 노가리는 이런 게 아니다',  '이건 그냥 생선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노가리 처음 먹어본다', '노가리나 팔지 왜 연극배우를 하고 있냐' 등등의 말들을 들었지요. 극단에서 지방공연을 갈 때에도 '너는 안가도 노가리는 같이 가야된다'라며 노가리를 챙겨 가더군요. 그 후로 지인들이 저를 통해 노가리를 사 먹기는 했지만 저는 노가리를 팔며 살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은 바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는 사람이 하니까 좋다고 말해주는 것이려니 했지요.
그런데 우연히 들른 노가리 파는 맥주집에서 노가리를 먹어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바보였네요!!

노가리가 수입산인 것 마냥 너무 뻣뻣하고 딱딱해서 우리집 노가리와는 비교된다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국내가공도 많을텐데, 왜 이런 걸 쓰나.. 이 정도로 순진하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벤치마킹 삼아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다른 노가리들을 먹어보았는데, '같은 반건조노가리라도 어찌 이리 맛이 다를까' 또 한번 놀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냥 신기합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자기네 집 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저거 다 상술이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저라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렇지만..
저희집 노가리 드셔보신 분들은 아실 거에요.

스마트스토어에 올라온 명장노가리에 대한 리뷰입니다.

제가 직접 제조를 하지 않으니 뭐가 다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분을 보면 비슷한 비율로 조미를 하거든요. 아마 가공 과정 중 기술의 차이겠지요. 겉면만 달착지근하게 코팅되는 것과  속까지 단짠단짠이 골고루 배어있는 것은. (아버지한테도 여쭤봤는데 왜 다른지 모르세요. 오히려 맛이 그렇게 다르냐며 반문하십니다)

매우 안타까운 점은...

제가 마케팅에 소질이 없었다

는 점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맛을 보여주면 바로 맥주를 찾을텐데, 온라인에서 어떤 식으로 그 맛을 보여줘야하는지 몰랐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사실 잘 모르고요.  

후기가 많아야 된다고 지인들한테 허수 주문 하게 하고 후기 받으라는 사람도 있고, 쿠폰이나 현금, 포인트 등으로 후기를 쓰게 꾀어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블로그 마케팅을 해라 페이스북 광고를 넣어라..등등 조언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제가 바보인가봐요. 내키지 않더라고요.

저희집 노가리를 자신들이 생산하는 것처럼 파는 스토어를 발견하고 찾아가봤어요. 많이 팔리는 게 부럽더라고요.  그런데 판매량보다 구매후기가 더 많고.. 실제 덕장은 텅 비어있었는데 마치 자신들이 생산하는 것 마냥 소비자를 속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눈속임은 하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바보였던 거죠. 어떻게 해서든 팔았으면 창고에서 타버리진 않았을텐데.....

한일건업 로고

아버지가 공장을 하시며 사용하시는 로고가 당신 성함의 마지막 글자인 信 입니다.
가진 게 없는 당신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약속할 수 있었던 것은 신뢰 밖에 없었고 많은 분들이 그것을 믿고 도와주었다고 하시는데.. 그분 자식인 제가 그 뜻을 알면서 치트키를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한 가지,  사고가 난 후에 제 서울사무실 냉동고에 남아있던 노가리를 사재기하고, 저희 공장이 재건되어 얼른 노가리를 다시 먹을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격려하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후원금 사용 계획

1. 공장 비품 구비

현재 작은 부지를 구해 공장을 재건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공장은 보상금을 받기 전까지 철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존 공장의 1/4 규모이지만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다음이라 그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조실을 짓고 있고, 이르면 8월 늦어도 9월에는 공장이 가동될 예정입니다.  (어서 빨리 그날이 오면 좋겠어요. 울 아버지 명장노가리 정말 맛있는데..)

공장이 재가동되면 저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습니다. 전에는 그저 온라인유통만을 했다면.. 제품 기획, 생산, 포장까지 모두 참여할 예정입니다. 

후원금은 공장에 필요한 사무용 기자재와 공장 식구들 식사를 할 작은 식당에 필요한 식기 등의 비품을 구입하는 데 일차적으로 쓰입니다.


2. 포장디자인비용

저는 네 마리의 반려묘와 함께 삽니다. 집에서 노가리를 구울라 치면 항상 냥님께 상납을 해야합니다. 댕댕이에게도 노가리는 공격적으로 흡입해버리는 고급간식입니다.
그동안 아버지는 인간만을 위한 노가리를 생산해왔습니다. 그래서 노가리자체에 간이 있지요. 공장이 본격적으로 재가동되면  반려동물을 위한 무염 노가리 간식을 만들 예정입니다.
이때 반려동물 간식용  노가리  디자인 비용으로 후원금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 프로젝트 일정 ] 

1) 현재 : 프로젝트 시작
2) 8월 18일 : 프로젝트 마감(이 날까지만 펀딩 참여 및 마이페이지에서 펀딩 취소가 가능합니다)
3) 8월 19일 : 리워드 제작 시작
4) 8월 19일 - 22일 : 펀딩 결제
4) 8월 23일 : 메세지 부착 + 리워드 발송 시작 


[ 발송 안내 ]

▶▶ 펀딩결제 후 메세지를 보내주시면 준비한 리워드에 부착해 보내드립니다.

* 메세지를 원하시지 않으시면 옵션에 '메세지 없음'으로 표시해주세요. 제가 보내드리고픈 메세지를 보내드립니다.

1) 모든 리워드는 로젠택배사를 통해 발송됩니다.

2) 8월 23일부터 순차적으로 하루 50박스씩 메세지순으로 순차발송됩니다. 배송소식은 새소식을 통해 공유해드리겠습니다.

3) 가능한 리워드/ 배송관련한 추가 문의사항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노가리닷컴'으로 문의해주시면 가장 빠르게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4) 제주도의 경우는 펀딩 시 추가 후원금 입력란에 3000원을 입력해주세요.
    도서/산간지방의 경우, 펀딩 시 추가 후원금 입력하기란에 5000원을 입력해 주세요.

[ FAQ ]

Q. 결제는 언제 되나요?

A. 소셜커머스, 오픈마켓과 달리 8월 18일까지 펀딩이 진행되고 프로젝트 성공하면 결제 기간을 거쳐 리워드 제작이 진행됩니다. 프로젝트 성공 시, 8월 19일부터 8월 22일까지 17시마다 결제가 실행됩니다. (주말/공휴일 제외, 총 4영업일) 잔고 부족, 한도 초과, 분실/정지카드 등의 사유로 결제 실패하실 수 있으며 결제 실패하신 경우, 최종 결제일인 8월 22일 오후 4시 30분 전까지 마이페이지에서 다른 카드로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Q. 펀딩 후, 옵션/배송지/카드 정보 변경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A. 펀딩 마감일 전까지 '펀딩내역' 페이지에서 수정하실 수 있습니다. 펀딩 마감 이후, 불가피한 사유로 배송지 변경하셔야 하는 분은 해당 페이지 내 '메이커에게 문의하기'를 통해서 문의해 주세요.


Q. 교환/환불/AS 정책은 어떻게 되나요?

A. 프로젝트 마감일 전까지는 '펀딩내역' 페이지에서 펀딩 취소 가능하지만 마감일 이후에는 취소가 불가능합니다. 해당 페이지의 상단 '펀딩안내' 탭에서 교환/환불/AS정책을 꼼꼼하게 확인하시고 펀딩해 주세요.


Q. 보관은 어떻게 하나요?

A. 개봉된 상태에서는 상온에 얼마든 두어도 괜찮습니다.   밀봉된 상태로 보관하시려면 냉장보관해 주십시오. 노가리 자체에 소량의 수분이 남아있습니다. 여름에 밀봉된 상태로 보관하산다면 냉장보관을 권합니다. (택배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드시게 될테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펀딩에 참여해주신 서포터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펀딩 오픈 이후의 진행상황,  아버지 공장 재건, 산불 이후의 소식 등은 새소식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