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画だけを40年、民画博物館長が選ぶ<大韓民国名品民画 第2巻>

[締切間近] 民画一筋40年、韓国民画ミュージアム館長が選んだ<大韓民国名品民画>第2巻 国内最大規模の民画専門博物館、韓国民画ミュージアムが贈る170点の名作をお楽しみ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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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画だけを40年、民画博物館長が選ぶ<大韓民国名品民画 第2巻>
JP 7
164000 KRW








조선시대 국가 필요의 그림을 그리던 도화서(圖畵署)의 마지막 궁중화원이었던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1920)의 친손자

운전 조광준(雲田 趙廣濬, 1890~?)의 미공개 <금강산도>

조광준, <금강산도>, 20세기 초, 견본채색, 각 141x30cm,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조석진의 외손자이자 적묵과 파묵 기법으로 잘 알려진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과 함께 조부 조석진에게 그림을 사사한 조광준의 

실경을 담은 <금강산도> 10폭병

당시 유행하던 금강산 관광 문화,
사생을 통한 실경 작품의 유행,
조광준만의 특색 있는 필묵법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줍니다. 

특히 탐승객들의 복장과 얼굴, 비율을 통해 내국인과 외국인을 표현하고,

개나 지팡이, 안내인의 지게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통해 

그에게 실경은 단순한 경치가 아닌, 

그 공간을 메우는 인물이나 물상도 포함된 확장된 개념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화란 무엇인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 이후 조선후기 사회는 큰 변화에 직면했다.

집권층은 혼란을 바로잡고자 실천적 측면에서의 유교를 강조하여 유학 사상이 실생활에 파고들었다.

신분제도도 큰 변화를 겪었는데 특히 18세기 농업기술 및 상품유통경제의 발달은 기술직 중인, 경아전 서리배 등 여항인(閭巷人)의 성장과 부유한 상인 계급을 탄생시켰다.


이로 인해 판소리, 국문소설 등의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고,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회화가 저변화 되면서 수요층의 확산을 가져왔다.

수요층의 확산은 곧 수요의 급증을 의미한다. 왕실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던 수복적인 궁중장식화는 더 이상 왕이나 왕에게 하사받은 고급 관료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제는 자본력을 확보한 그들에게도 복을 받고 액운을 막아주는 그러한 좋은 의미의 그림이 필요했고 또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민화가 탄생한다.

그렇다면 민화는 과연 서민들만의 그림인가? 

광통교 지전에서 판매되던 그림 중 상당수는 백동자도, 신선동자도 등과 같이 대부분 작화실력이 뛰어난, 상류층에서 향유하던 그림이었다.

또한 현존작 중에서도 궁중장식화 형식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도화서 화원의 솜씨로 보이는 작품이 상당수 남아있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은 비전문적인 화가들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왕실과 사대부로 대표되는 집권층의 그림이 저변화 되는 과정에 도화서 화원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민화의 특징

  민화에서 회화적으로 도상이 표현되는 특징 중 가장 주목할 것은 ‘강조’이다. 

민화 속 도상은 그것이 무엇을 그렸는지 관람자가 깨닫기 쉽게 중요한 특징을 부각시키고 중심 도상을 가릴만한 것들은 아예 그리지 않는다.

물론 바탕색도 칠하지 않는다. 도상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도상이야 어눌하든 정교하든 작화실력이 문제될 것도 아니었다.

다만 복을 주고 액운을 막아주는 도상이 무엇인지 알아볼 정도로만 그려져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결국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드커버에 무광 코팅을 올려 

오래도록 사용 가능한 도록으로 제작합니다.


축수도(畜獸圖)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 다수 등장한다. 

특히 태종 연간에는 경상도에서 겨울을 지나 봄까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만 기백 명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태종 5년에는 밤에 호랑이가 근정전 뜰에 들어오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호랑이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듯 어두운 밤 산기슭에서나 마주칠 수 있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해서 호랑이로부터 안전하지는 않았다.

호랑이 입장에서야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곳이 임금이 거하는 곳이든 노비가 사는 곳이든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호랑이는 대부분의 민화 속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초월적 능력을 가진 수호신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유독 작호도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나운 두려움의 대상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작호’라고 하면 ‘까치 작(鵲)’에 ‘범 호(虎)’자를 사용하여 까치와 호랑이가 주인공인 그림을 뜻한다.

<작호도>에서 보이는 호랑이는 우스꽝스러운 얼굴과 자세가 특징적이다.

혹자는 호랑이의 그 찌그러진 얼굴이 고양이를 닮았다고도 한다.

명색이 동물의 왕이 마당에 뒹굴며 한가로이 햇볕을 즐기는 고양이에 비교되는 것이다.

호랑이로서는 여간 자존심 상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호랑이 등에 빼곡한 무늬도 실제 호랑이에서 볼 수 있는 줄무늬 뿐 아니라 표범무늬, 그리고 혼합된 형태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여러 마리의 호랑이를 그리면서 어미 호랑이는 줄무늬를, 새끼 호랑이들은 표범무늬를 그려 넣은 작품도 있다.

호랑이의 실제 모습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들이 보고 싶은, 또는 곁에 두고 싶은 형태로 그렸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호랑이는 그래서 더 가깝고,
친근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어해도(魚蟹圖)

병풍으로 제작되었던 어해도에는 주로 물고기, 게 조개, 새우 등이 등장한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多産)의 상징이고, 게는 양보를 뜻한다.

조개는 조개 합(蛤)자를 따라 화합의 의미이며, 새우는 등이 굽어서 ‘바다의 노인’이라는 뜻에서 해로(偕老)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의미를 종합적으로 볼 때

부부가 만나 아이를 많이 낳고, 서로 양보하며 화합해
백년해로하라는 길상적 의미를 담아
주로 부부의 방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는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應傳)」에 나오는 어변성룡의 고사를 담아 물고기가 용이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른 봄, 황하강이 범람할 때 늙은 잉어들이 떼를 지어 상류로 이동하다 용문폭포에 이르면 그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성공한 단 한 마리 잉어만이 번개에 꼬리가 태워지고, 여의주를 물어 용이 된다. 

잉어는 공부하는 선비를, 여의주는 과거 급제, 태양은 임금을 뜻하여 입신출세와 시험합격을 기원했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산수화(山水畵) 

민화에서 산수화(山水畵)는 한국이나 중국의 명승지나 아름다운 절경을 담은 그림이다. 

실경을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유행하던 조선 후기에도 민화에서는 상상 속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것이 특징적이다.

민화에서 선호되었던 산수화의 주제로는 금강산(金剛山), 무이구곡(武夷九曲), 관동팔경(關東八景), 소상팔경(瀟湘八景), 고산구곡(高山九曲) 등이 있다. 

현대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동심원처럼 묘사한 산과 바위,
360도 고개를 돌려 바라본 듯한 나무 구성
유독 크게 그려 강조한 인물 표현까지 

선조들의 다채로운 표현력은 민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입니다. 


화훼도(花卉畵)

화훼도에 그려지는 꽃은 저마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모란은 꽃 중의 왕이라고 하여 부귀영화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연꽃은 함께 그려지는 연밥을을 '연실' 또는 '연과'라고 하는데 여기서 '연꽃 연()'자를 '이을 연()'자로 해석하여 자손의 번창과 대를 이은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포도도에서 힘차게 뻗어나간 줄기와 풍성한 포도 송이는 대대손손 자손의 번창을 기원한다. 




책거리도(冊巨里圖)

 책거리도(冊巨里圖) 또는 책가도(冊架圖)는 중국의 건륭(1736~1795) 연간에 발전했던 다보격 또는 다보각 계통의 그림이 부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왕실의 화원들에 의해 그려지고 궁중에서 애호되었던 이른바 상류층 그림을 그 시작으로 한다.

18세기 후반까지 예조에서 운영했던 도화서 이외에 공식적인 궁중화원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조선은 정조(1752~1776~1800)에 의해 1783년 11월에 창덕궁 규장각 내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을 설치하여 운영함으로써 합법적인 궁중화원을 통한 그림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고종 집권기인 1881년경까지 약 100년간 지속되었다.

정조는 자비대령화원의 녹취재(祿取才) 시험에 직접 문제를 낼 정도로 학문적 지식 뿐 아니라 예술에도 능했다. 

특히 8개 화문 중에서 책가도를 세 번째로 많이 출제할 정도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가도는 정조의 호학태도와 사실주의를 강조했던 그의 회화관, 그리고 진채화에 대한 심미 취향이 함께 작용하여 조선 후기 회화사에서 새롭게 탄생한 화목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각자 원하는 것을 그려 내라는 명에 신한평(申漢枰,1735~1809)과 이종현(李宗賢, ?~?)이 책거리 그림을 그리지 않자 마땅히 책거리를 그렸어야 한다며 귀양을 보낸 것은 정조의 책가도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학문을 숭상했던 왕답게 평생 많은 책을 가까이 하여 지식을 쌓고
지혜롭게 살라는 교훈
을 담은 책가도를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문자도(文字圖)

문자도(文字圖)는 문자와 회화적 도상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형성된 회화이다.

한자 자체가 성형문자라는 점, 즉 형상을 본 뜬 간략한 윤곽선 같은 그림이 문자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문자도의 발생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 문자도가 유입된 경로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1610년(광해군 2년) 남평현감(南平縣監) 조유한(趙維韓)이 명나라 장관(將官)으로부터 받은 백수도(百壽圖)를 광해군에게 진상했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에 들어온 중국의 수복적(壽福的)인 문자도는 이후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 여덟 가지 유교의 덕목을 담은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로 변형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런데 효제문자도는 공통적으로 문자도가 형성되었던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형태로, 당시 조선 사회 수요자의 유교적 강령에 대한 요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덕목을 늘 생각하며 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화조도(花鳥圖)

꽃을 그린 그림을 화훼도(花卉圖)라고 하고 여기에 새를 추가한 그림을 화조도(花鳥圖)라고 칭한다. 

화훼도 속 각각의 꽃은 부귀영화나 자손의 번창과 같이 다양한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그러한 긍정적 바람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새를 추가한 화조도는 조선 후기 민화의 생성 이래 가장 많이 대중화되었던 민화이다.

화조도가 민화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새와 꽃, 나무, 풀 등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생명들을 화폭에 담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화조도에는 몇 가지 규칙이 존재한다. 

초충도에서 곤충이 그러하듯 화조도에서도 새는 늘 쌍으로 등장한다.

부부를 뜻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러하듯 우리 조선시대 선조들에게도 부부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이었을것이다.

그래서 화조도가 민화 중에서도 유독 많이 그려져 현존하는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에는 부부의 화합과 음양의 조화를 기원하는 작품의 의미도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새가 정해지면 배경에는 그 새와 관련된 민담이나 고사 등에서 함께 등장하는 꽃이나 나무가 그려진다. 

봉황이 그려지면 오동나무나 대나무, 오리가 그려지면 연꽃이 함께 한다. 

이렇게 해야 의미상 합이 잘 맞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규칙은 당시 민화를 생산하던 무명화가들이나 지전에서 작품을 사다 가옥을 장식하던 수요자들 모두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이 규칙들이 바로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고 극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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