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실제 사건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천만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모두 신문기사 한 줄에서 출발했습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암수살인>, <범죄도시>, <조디악>, <실미도>, <도가니>, <이태원 살인사건>, <그놈 목소리> 등등
잘 알려진 영화·드라마·소설 대부분이 실제 범죄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런 실화 소재 영화나 실화 소재 소설을 볼 때마다, 모티브가 되는 사건을 찾아보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건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사건을 찾게 되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남이 잘 모르는 범죄를 먼저 알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증거, 단서가 담긴 사건 파일이 담겨 있습니다.
범죄를 알면
인간과 사회를 알 수 있습니다
아크플롯은 1945년부터 2000년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들을 모아왔습니다. 지독한 작업이었습니다. 끔찍했고, 잔인했고, 안타까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범죄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기록이라는 것.
해방 직후 – 강도살인
해방 직후의 범죄 기록을 보면,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강도살인은 ‘소’를 노린 사건이었습니다. 소는 곧 집안의 전 재산이었고, 생계 수단이었습니다. 지방의 소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상인을 덮쳐 소를 빼앗고 살해하는 사건들이 잇따랐습니다. 그 범죄 기록을 읽다 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존이 얼마나 절박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960년대까지는 강도살인 사건도 많았습니다. 이 무렵 일어나는 강도살인 사건은 가족을 몰살시키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강도가 한 집안의 사람들을 모두 살해할 때는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1963년 10월 시흥에서 일어난 일가족 몰살 사건이 그 예입니다. 속칭 동창골이라는 곳에 살던 김씨 집에 괴한이 침입하여, 가족 3명을 죽이고 달아납니다. 집주인 김씨의 동생을 청각장애인이었고,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김씨는 큰 상처를 입고도 대문 밖까지 나와 "불이야!"라고 소리 지른 후, 쓰러져 사망하고, 그 소리에 놀란 괴한은 도주합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와 범인을 추적합니다. 그러나 괴한은 이미 도주한 후였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사건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었던 김씨의 동생을 의심하긴 했으나 혐의점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당시에는 우연히 증거가 발견되고, 우연히 증인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발견된 증거로 인해 범인이 붙잡혔습니다.
범인은 바로 앞집에 살던 피해자 김씨의 10촌 동생 김완선(21)과 전직 경관 유근창(45)이었습니다. 김완선은 복면을 하고 김씨 집에 침입했으나, 피해자들이 반항하던 중 복면이 벗겨져 얼굴이 드러나자 가족 모두를 살해했습니다. 김완선은 피해자들의 장례식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까지 도왔습니다.
살인귀 고재봉과 같은 시기 일어난 사건이라 경찰은 이 범행도 고재봉이 벌인 일이라 추정하기도 했으나 그 무렵 고재봉은 도주 중이었습니다.
치안이 아무리 좋아져도 지방이나 외딴 마을까지 미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총을 든 강도가 등장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권총, 한국전쟁이 끝나고서는 카빈 소총을 든 강도가 등장했습니다. 이때 카빈 소총은 개머리판을 떼어내 개조를 한 형태였습니다. 그래야 몸이 숨겨 범행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업화 시기 –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다
시간이 지나 산업화가 시작되자, 범죄의 대상도 달라졌습니다. 라디오, 자전거, 전자제품 같은 당시에는 고가의 물건들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라디오 한 대, 자전거 한 대를 빼앗기 위해 생명을 빼앗는 사건이 늘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외딴집에서 일가족을 몰살하는 사건이 많았습니다. 쌀 몇 말, 돈 몇 푼 때문에 가족 전체가 희생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범죄의 무대는 바뀌었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도심 한복판에서, 아파트 단지와 여관, 번화가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식모 살인 사건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집이 비었을 때, 식모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는데, 강도들은 식모를 살해하고, 물건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과거 지어진 아파트나 집에 '식모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식모의 급료는 정말 적었습니다. 고용한 사람의 용돈 3분의 1에 불과했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와 집을 지키다가 목숨까지 잃는 비극.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대 사회와 사이코패스의 등장
바로 이 도시화와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범죄자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생계 때문에, 분노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인을 그 자체로 즐기고,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며 쾌락을 느끼는 범죄자들이 사회에 나타난 것입니다.
왜 이 시기에 사이코패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을까요?
도시의 익명성 – 시골 공동체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름도, 과거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 익명성이 범죄자를 숨겨주었고, 반복적 범행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급격한 사회 변화 –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지만, 동시에 소외감과 불안을 키웠습니다. 공동체적 유대가 무너지고, 개인은 고립되었습니다. 그 고립 속에서 공감 능력을 상실한 범죄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아노미 – 70~80년대, 경제개발과 더불어 “돈이 곧 가치”라는 풍조가 퍼졌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 시기를 “아노미(규범 상실)의 시대”라 불렀습니다. 인간의 존엄보다 이익이 우선되던 분위기 속에서, 타인을 도구처럼 대하는 범죄가 잇따랐습니다.
이런 사회적 토양이, 단순한 우발적 범죄와는 다른 냉혈적 연쇄살인범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에는 김대두, 박분례, 강창구, 이춘재 등 널리 알려진 연쇄살인자는 물론, 1947년 우리나라 신문에 처음으로 기록된 투구꽃 연쇄살인범 '최봉운', 총기 연쇄살인 강도 임석봉, 결혼을 빌미로 사람을 연쇄적으로 죽인 유홍식 등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자의 기록까지 담겨 있습니다.
1954년부터 활동한 권총 살인강도 임석봉, 신문에 '쌍권총의 명수'라고 보도됨
이렇게 사건을 조사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범죄를 알면, 단순히 사건 하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를 알면 사회와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를 알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방송에서도 다루지 못한 사건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그것이 알고 싶다>, <알쓸범잡>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다루지 않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은 그 공백을 메우는 기록입니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신문을 뒤적이며 발굴한 사건들입니다.
·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
·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건들
·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건들을 발굴하겠다는 사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정말 막대한 분량입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건들,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사건들이 있습니다. 물론 최초로 공개되는 사건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문과 자료에 기록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료를 수집하면서 기사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다면 발굴될 수 없었던 사건들입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은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을 발굴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이 자료로 범죄학 공부를 해도 좋고(경찰 관계자도 구입하셨습니다),
창작물을 쓰는 데 도움을 얻어도 좋습니다.
스릴러나 범죄물 덕후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의 첫 번째 포인트:
1. 인간의 잔인성
1987년 5월 2일, 여의도 앞 한강변 강물 속에서 50대 여성의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체가 발견되기 전, 한강관리사업 소속 청소원 육씨가 여의도 63빌딩 옆 고수부지 앞 제방 계단에 잘린 여성의 사체 일부가 먼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육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서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방 부근에 쓰레기가 많이 밀려와 이를 수거하던 중 15센테미터가량의 얕은 물속에 잠겨 있는 제방 계단에 사람의 손 같은 물체가 어른거려 가까이 가보니 손목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잠수부 10여 명을 동원, 인근 물속을 수색합니다. 같은 날 오후 2시 수심 4미터 강바닥에서 잘린 여성의 머리와 사체 일부를 각각 찾아냅니다. 여성의 머리에는 세 군데의 타박상이 있었고, 목과 손목이 모두 예리하게 잘려 있었습니다.
동시에 원효대교 아래 고수부지를 돌아 63빌딩 주차장까지 약 200미터에 걸쳐 10여 군데 핏자국이 있는 것을 찾아내고, 범인이 김씨를 살해하고 훼손한 후, 승용차나 오토바이에 싣고와 강물에 버린 것으로 추정하고 한강 주변을 수색합니다.
경찰은 지문 감식을 통해 5월 4일 오전, 숨진 여성의 신원이 김씨(55)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김씨의 주소지는 충북 청원군에 위치에 있었습니다. 경찰은 김씨의 주소지에 형사들을 급파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장남 최민수씨(26, 가명)를 불러 조사합니다.
장남 최씨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그동안 충북 청원에 사는 딸 최명순(28, 가명)씨 집과 자신의 집을 번갈아오가며 생활해왔습니다. 공장 등에서 막일을 해왔으며, 지난 달 말쯤(4월 말) 자신의 집을 나간 뒤에 소식이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범인은 도축업자?
숨진 김씨는 남편 최병식(68, 가명)씨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남편 최씨는 20년 전 무단가출을 해 1978년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숨진 김씨가 평소 주벽이 심해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자주 부렸다는 주소지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라 1차로 주변인물에 대한 수사를 벌입니다.
이런 종류의 시체 훼손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경찰은 범인이 평소 칼이나 도끼 등의 흉기 사용에 익숙한 사람으로 추정했습니다.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사건에서도 이런 식으로 용의자를 좁혀갔는데, 그 용의자가 범인인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경찰은 노량진 수산시장과 도축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범인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충격적이게도 장남 최씨였습니다. 최씨는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체를 훼손해 버렸습니다. 사이코패스만이 사체를 잔혹하게 훼손하는 게 아닙니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들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이 생기고, 지문을 등록한 뒤에는 변사체의 신원이 금방 밝혀졌습니다. 그 신원 중심으로 수사를 개시하자 범인을 잡는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최씨는 검거된 후 경찰에 진술합니다.
“5월 1일 저녁 9시에 귀가해 새벽 근무에 나가기 위해 일찍 잠이 들었으나 어머니가 만취돼 들어와 발길질을 하는 등 마구 술주정을 부려 순간적으로 격분, 맥주병으로 때려 살해했다.”
최씨는 치밀하게도 어머니의 사체를 각각 다른 곳에 버렸습니다. 그러고는 다음 날인 5월 2일 회사에 출근까지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하고... 인간의 잔인성은 마음을 깊은 심연으로 빠져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접하지 않고서는 범죄자를 연구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의 두 번째 포인트:
2. 욕망과 살인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살인 사건 중에서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종류의 사건 중 하나가 불륜이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살인 사건입니다. 불륜 관계에서만 살인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치정살인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노인이 같은 남성인 청년들을 성적으로 이용하다가 결국 살해되는 사건, 양부모로 섬기다가 부인과 잠자리를 가지다가 남편에게 살해된 청년 사건 등 욕망은 언제나 살인의 큰 동기였습니다.
엉뚱한 사람을 독살하다
1980년대에도 이런 종류의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1983년 5월 9일,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강경자(42, 가명)씨는 시동생 김영식(27, 가명)과 불륜을 저지릅니다. 강경자의 남편은 15년 전에 사망했습니다. 1982년 1월, 시어머니 이씨(67)가 이 관계를 눈치채고 이를 추궁하자 알사탕에 극약을 발라 먹여 살해합니다.
이 범행은 후에 검거된 후 밝혀진 것으로 보입니다. 1982년 시동생 김씨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이에 강경자는 격분 김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1983년 5월 9일 오후 2시경 김씨 집 부엌에 있는 소주병에 극약을 탑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시동생 김씨는 오후 7시경 농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한 마을에 사는 최씨를 만나 함께 집으로 가 술을 마십니다. 김씨와 최씨는 술을 마신 후에 배가 아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김씨만 회복되고 최씨는 숨졌습니다.
계획적인 치정살인?
1984년 5월 21일에는 서울의 한 여관 201호 벽장에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됩니다. 청소를 하려고 들어간 종업원이 벽장 안에서 심한 악취가 나 열어보니, 목이 졸려 숨진 여성이 있었습니다. 숨진 여성은 속옷만 입고 있었고 벽장 이불 틈에 무릎이 꺾여 비스듬히 누워 있었습니다.
범인은 벽장 맨 밑바닥에는 5월 6일자 신문을 깔고, 그 위해 이불 2채를 포개 놓은 뒤, 여성의 시신을 눕힌 다음 다시 이불 4채를 쌓아 잘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변사체가 발견된 벽장은 세탁을 하기 위한 겨울 이불만을 쌓아둬 종업원들이 손길이 자주 미치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여성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고, 벽장 구석에는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샌들 1켤레, 블라우스, 스커트, 조끼, 핸드백 등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경찰은 범인이 여성을 살해한 뒤 수사를 늦추기 위해 시체를 벽장 속에 감춘 뒤, 신원을 밝힐만한 단서를 없앤 것으로 보고 계획적인 치정살인으로 수사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해당 201호실에는 6일부터 모두 28명의 남성이 투숙했으나 투숙객들은 벽장 속에 변사체가 감춰 있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만 “여관에서 악취가 난다.”고 종업원들에게 항의했으나 여관측은 여성의 시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화장실 청소만 했습니다.
여성은 심하게 부패돼 지문도 채취할 수 없었다. 금반지도 그대로 끼고 있어, 금품을 노린 강도살인은 아니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변사체가 발견되면, 수사는 어려움에 부딪쳤습니다. 용의자를 특정할 수도, 살해 동기도 쉽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종 신고조차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됩니다.
이 사건 또한 범인을 잡았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초기에 범인이 잡히지 않을 때는 대부분 미제로 남았습니다. 이 자료집을 만드는 동안,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범죄자들이 죄가 들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의 세 번째 포인트:
3. 도시의 살인자들
도시화가 시작되기 전, 살인사건은 마을과 동 떨어진 곳에서 자주 일어났습니다. 외딴집 몰살사건이 자주 일어났고, 강도들은 돈 몇 푼, 쌀 몇 말에 일가족을 몰살했습니다.
사실 지금과 비슷한 종류의 살인도 자주 일어났지만, 당시 과학수사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미제로 남는 사건도 많았습니다.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살인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사진은 과학인 접근 방식으로 수사를 시작했고, 많은 범인들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툭하면 살인
1988년 2월 11일자 동아일보에 ‘툭하면 살인, 인명경시 만연’이라는 기사가 올라옵니다.
살인강도, 강간, 어린이 유괴, 부녀자 납치, 뺑소니, 조직폭력 등 흉악범죄가 전국 곳곳에서 빈발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금품을 노린 강도 또는 원한, 치정에 얽힌 범죄, 일가족 집단살해는 물론이고 어린이들까지 범행의 희생물이 되고 있었습니다.
강도사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범인들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 방범 근무를 나가던 경찰이 집단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털린 사건까지 있었으니, 당시 강력범죄 예방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성균관대 사회학 심윤종 교수는 이러한 강력범죄 격증에 대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와 사회변혁기에 나타나는 일종의 ‘아노미(규범상실)’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만연된 물질만능주의 한탕주의 심리도 이에 가세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1980년대에 연쇄살인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연쇄살인으로 추정되는 사건들이 꽤 있었으나, 연쇄살인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 언론에 ‘연쇄살인자’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합니다.
연쇄살인범 이외에도 우순경 사건으로 대표되는 대량살인 사건, 여성에게 독극물을 먹이고 죽어가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한 이동식 사건, 등은 범죄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춘재가 활동한 시기가 바로 1980년대였습니다. 박분례처럼 가족을 독살한 김선자, 공주 연쇄살인 사건의 강창구,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의 김태화와 조경수, 60대 노인과 어린이를 살해한 오이균, 8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춘재 등 연쇄살인범들이 부쩍 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리부트, 왜 필요했을까?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은 처음에 혼자서 시작했습니다. 1부 1권부터 8권까지, 자료 수집부터 집필, 교정,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해냈습니다. 그야말로 고행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1권부터 5권까지를 다시 만들고, 6권부터 8권까지는 2부 형식으로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권수가 늘어나면서(총 8권)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관리가 힘들어졌고, 독자들이 원하는 사건이나 정보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묶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빠진 부분을 보강했습니다. 판결문이 없는 사건은 새로 찾아 넣고, 수사 과정과 증거까지 추가했습니다. 기존 사료집에 없던 새로운 사건과 자료도 함께 보완했습니다.
낡은 기록을 다시 해석하는 시간
초반부 사건들을 다시 손보는 데에는 상상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분명히 한글로 기록되어 있지만, 1950~60년대 기사 문장은 난해했고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1957년 보도된 ‘돈을 목적으로 세 사람을 연쇄 살해한 사건’의 기사는 읽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 불명확한 인명 표기, 문법이 뒤엉킨 기사들. 당시 자료를 지금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은 단순한 편집이 아니라 번역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이런 부분이 그대로 노출된 경우도 있었지만, 리부트 된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전 3권)은 다릅니다. 모든 기사를 현대 독자가 읽을 수 있게 다시 정리했습니다.
리부트 된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전 3권)은 다릅니다.
읽기 편하게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리부트의 핵심 포인트
1️⃣ 사건 자료 보완
교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차이를 발견했습니다.
기사에는 ‘김득우’라 적혀 있던 범인의 이름이, 판결문에는 ‘김득수’로 기록돼 있던 겁니다.
만약 판결문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잘못된 이름이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뻔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결코 한두 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뿐 아니라 증언, 단서, 수사 과정까지 다시 열어보며 보강했습니다.
수백 건의 사건을 다시 펼쳐보는 일은 끝없는 노동이었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료집’이라 부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2️⃣ 사건 추가
애초엔 10건 남짓만 보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제가 같은 사건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을 한 면 한 면 넘기며 수집하다 보니, 사회면이 아닌 작은 코너에 숨어 있던 사건들도 이제야 드러났습니다.
특히 짧게 단신으로 보도된 사건보다는, ‘사건 발생 → 수사 → 판결’까지 흐름이 드러난 사건을 중심으로 추가했습니다.
그렇게 발굴된 사건들은 그동안 어디에서도 기록되지 못했던, 그러나 반드시 남겨야 할 이야기들입니다.
3️⃣ 사건 보완 예시
###밀수왕 이정기
일자: 1960년대 | 유형: #밀수해방이 되고 일본과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무역을 당연히 꿈도 꿀 수 없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싶어도 당시 우리나라에는 살 물건이 많지 않았다. 이 기회를 이용해 달려든 것이 특공대밀수꾼이다.
특공대밀수는 1969년까지 부산항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를 무대로 한 해상밀수였다. 대마도의 이즈하라항을 거점으로 한 밀수였기 대문에 흔히들 ‘대마도 특공대 밀수; 또는 ‘이즈하라 특공대 밀수’라고 불렀다.
일본 상품이 우리나라에 무사히 들어오려면 중간에 전초기지가 필요했는데, 대마도 이즈하라항이 적합했다.
밀수단은 소형 쾌속선으로 늦은 저녁 무렵에 이즈하라항을 출항, 공해에서 분위기를 파악한 다음 야밤을 틈타 속력을 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그렇게 밀수품을 남해안 섬이나 해안에 내리거나, 다른 배에 옮겨 싣기도 하고, 바다에 빠트리는 수법을 썼다. 이 특공대밀수는 집단적 조직체로, 폭력배와 권력기관이 개입돼 있어 난폭하고 정보가 밝았다.
1965년 이즈하라항에는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30여 척의 밀수선이 매일 정박해 있었다. 이들에게 일본상품을 공급하는 무역상도 20여 개나 됐다.
1966년도 이즈하라 세관에 신고된 밀수선은 160척, 신고금액은 32만 8천 달러였다. 1967년도에는 밀수선이 190척, 신고금액은 69만 달러로 더 증가했다.
밀수 초기에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간 품목은 쌀, 탄피와 같은 고철과 해초류였다. 들어온 품목은 화장품류와 직물류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약품류와 학용품, 오토바이, 자전거, 텔레비전, 양산과 같은 생활용품도 포함됐다.
####밀수왕 이정기
이정기는 1960년대, 이즈하라항을 밀수본거지로 활동하며 밀수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정기는 자유당 말기인 1958년에 밀수를 시작했는데, 당시 남해안 밀수왕으로 이름을 떨치던 한국필과 부산에서 어울리면서 밀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밀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난다.
박정희정부는 밀수꾼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한국필마저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수배자인 이정기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숨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961년 9월 특공대 밀수선을 타고 일본 대마도로의 밀항이었다.
대마도에서 이정기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붙잡혀 징역 10월형을 받아 6개월을 복역한다. 출옥 후 이즈하라에 거주하는 방법으로 찾은 것이 일본여인과의 동거였다. 이정기는 그렇게 거주증을 받고 밀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대마도로 찾아오면서 밀수조직은 활기를 찾았다. 이정기는 대마도에서 밀수전문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오종옥, 밀수꾼을 알선하는 중개상 김의경과 손을 잡고 특공대 밀수선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특히 밀수품을 신용으로 외상거래를 해주면서 일일이 상륙과 처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이정기가 지배인으로 있던 야마다 상회는 날로 매출이 늘어나자 일본 관헌에서는 그를 수출유공자로 추대까지 했다.
이정기는 그렇게 이즈하라항에 온 밀수꾼을 위해 카바레와 술집, 여관 등을 늘려 그야말로 불야성의 항구를 만드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줬다. 마치 이즈하라항은 해적 영화에서 나오는 항구처럼 밀수꾼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한국 정부는 1965년 밀수합동수사반 발족했고, 일본도 더 이상 불법 밀수 조직을 눈감아주지 않았다. 1967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우리나라 실무자로서는 처음으로 대마도에 부산세관의 조준 심리과장이 도착했다.
부산세관 조준 심리과장은 늦음 밤, 이즈하라항 한 여관방에서 당시 밀수왕 이정기·오종만과 만났다. 협박, 설득, 회유를 반복하며 새벽까지 이야기를 했다.
1968년 12월 1일 밀수왕 이정기와 거물급 동료인 오씨와 김씨가 합동으로 ‘쓰시마 밀무역을 결별하면서’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발표를 끝으로 대마도 밀수 루트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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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왕 이정기와 특공대 밀수
범죄자: 이정기
사건유형: 밀수
사건일자: 1968/11/30
사건장소: 대마도 일대
사건요약: 1960년대 일본 쓰시마섬 이즈하라항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밀수왕’으로 불린 이정기가 특공대 밀수 조직을 이끌다 은퇴
##해방 이후 밀수의 발생과 특공대 밀수의 등장
해방 이후 일본과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무역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내에는 살 만한 물건이 부족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일본 제품을 원했다. 이 틈을 타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특공대 밀수꾼’이었다.
특공대 밀수는 1969년까지 부산항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를 무대로 한 해상 밀수였다. 밀수꾼들은 대마도 이즈하라항을 거점으로 삼아, 소형 쾌속선을 타고 공해에서 분위기를 살핀 뒤 밤을 틈타 우리나라로 밀입국했다. 물품은 남해안 섬이나 해안에 내려놓거나, 다른 배에 옮겨 싣거나, 바다에 빠뜨려 나중에 수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밀수는 집단적 조직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폭력배와 권력기관까지 개입돼 있어 난폭하고 정보력도 뛰어났다. 1965년에는 한국에서 건너간 밀수선이 30여 척 매일 이즈하라항에 정박해 있었으며, 일본 무역상도 20여 개나 이들과 거래했다.
1966년 이즈하라 세관에 신고된 밀수선은 160척, 신고 금액은 32만 8천 달러였고, 1967년에는 190척, 69만 달러로 증가했다. 밀수 초기 한국에서 일본으로 나간 품목은 쌀, 고철, 해초류였으며, 한국으로 들어온 것은 화장품, 직물류, 약품, 학용품, 오토바이, 자전거, 텔레비전, 양산 등이었다.
##남해안 밀수왕 한국필과의 인연, 그리고 밀항
이정기는 자유당 말기인 1958년 밀수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 남해안 밀수왕으로 불리던 한국필(1962년 사형)과 부산에서 어울리며 밀수 세계에 입문했다. 이정기는 활달한 성격에 머리 회전이 빠르고 주먹이 셌으며, 잘생긴 외모와 호탕한 씀씀이로 유흥가에서도 유명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은 밀수꾼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호형호제하던 한국필마저 사형대에서 사라지자, 수배 중이던 이정기는 숨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1961년 9월, 특공대 밀수선을 타고 일본 대마도(쓰시마섬)로 밀항했다.
일본에서의 체류와 밀수 본격화
이정기는 쓰시마에 도착하자마자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붙잡혀 징역 10월형을 받고 6개월을 복역했다. 출옥 후 귀국을 시도했으나, 국내에서는 체포와 극형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일본 여성과 동거해 1년짜리 거주증을 발급받는 방식으로 이즈하라에 정착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밀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동료 밀수꾼들이 대마도로 찾아오자 조직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는 이미 밀수 전문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던 오종옥, 밀수꾼을 알선하는 중개상 김의경과 손잡고 특공대 밀수선을 상대로 영업을 벌였다.
이정기는 밀수품을 외상거래로 제공하며 상륙 및 처분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다. 그가 지배인으로 있던 야마다 상회는 매출이 급격히 늘어 일본 관헌으로부터 ‘수출유공자’로 추대되기도 했다.
##세관 감시선의 추격과 영덕호 격침 사건
1965년 8월 2일 새벽,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항을 떠난 쾌속 밀수선 ‘영덕호’는 약 4백만 원어치의 밀수품을 가득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배는 5톤 규모에 170마력 엔진을 장착한, 흔히 ‘특공대 밀수선’이라 불리던 전형적인 밀수 전용 선박이었다. 영덕호의 선주이자 배의 실질적인 주인은 바로 이정기였다. 그는 일본 대마도를 근거지 삼아 활발한 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번 항해 역시 그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합동수사반은 영덕호가 밀수품을 실어 나른다는 특수 정보를 사전에 입수했다. 부산에서 출항한 세관 감시선은 일본 대마도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해상에서 영덕호의 동태를 포착했다. 8월 2일 오전 2시 40분, 이즈하라항을 출발한 영덕호가 북상하는 것이 확인되자 추격이 개시되었다. 감시선은 정선 명령을 내렸으나, 영덕호는 이를 무시하고 금만항을 향해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밀수선과 감시선은 한밤중 바다 위에서 치열한 추격전을 벌였다. 영덕호가 추적을 뿌리치려 급선회와 가속을 반복하자, 감시선은 더 이상 체포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실탄 사격을 개시했다. 경기관총과 기관포에서 발사된 약 2백여 발의 탄환이 영덕호 선체를 강타했고, 밀수선은 급격히 침수되기 시작했다. 결국 배는 30분 만에 폭발하며 침몰했다. 이는 대한민국 당국이 밀수선을 실탄 사격으로 직접 격침시킨 첫 사례였다.
침몰 직전, 배에 타고 있던 선장 김천출(49, 일명 윤병도)과 기관장 정문석(34)은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 곧바로 세관 감시선에 의해 구조된 이들은 관세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검에 송치되어 구속되었다. 배의 선주였던 이정기 또한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며 다시금 밀수왕의 실체가 드러났다.
영덕호에서 적발된 밀수품은 ‘포리덴-필름’ 24권, ‘데드롱’ 양복지 5상자, 여성용 봉채 1상자(2천 개)에 달했으며, 총액은 약 4백만 원이었다. 당국은 이정기가 그해 3월부터 이미 6차례에 걸쳐 약 5천만 원 상당의 밀수품을 들여온 것으로 파악했다. 사건 이후 정부는 영덕호 격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밀수 단속 강화의 정당성을 부각시켰다.
##밀수왕의 위세와 이즈하라항의 불야성
이정기는 단순히 물품 거래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대마도 이즈하라항에 드나드는 밀수꾼들을 위해 유흥업소와 숙박시설까지 확장했다. 카바레, 술집, 여관 등이 줄줄이 들어서며 항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과 환락으로 들끓었다. 마치 해적 영화 속 항구처럼, 이즈하라항은 밀수꾼들의 집결지이자 모항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함 뒤에는 철저하게 조직화된 이정기의 밀수 시스템이 있었다. 그의 조직은 단순한 소규모 뒷거래가 아니라, 일종의 특공대 밀수 군단처럼 움직였다. 기사에 따르면, 불침함대와도 같은 밀수선단이 운영되었고, 일본의 소극적 비호 아래 행해지던 밀수는 막대한 규모로 확대되었다. 실제로 1966년 5월 20일, 15척의 밀수 쾌속선이 일시에 잡히는 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이즈하라항은 거대한 밀수 본거지였다.
##조직적이고 치밀했던 밀수 네트워크
약 2개월 전, 이정기의 밀수 조직은 부산 영도에 재정 기지를 마련했고, 약 15척의 밀수선을 거느리며 한 번 출항에 10척 이상을 동시에 투입하는 대규모 작전을 벌였다. 이들은 부산항 인근의 영도 앞바다를 거점으로 삼아, 영도동삼, 청학동, 아치섬, 조도 앞바다까지 치밀한 연락선을 구축했다.
밀수선들은 부산항만국록 앞바다에서 세관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교묘히 접안했으며, “뚱바위”와 같은 지형물을 은밀한 신호장소로 활용했다. 대마도에서 부산을 오가는 항로에는 의트랜시버(군용 약식 배선능력)를 장착해, 부산에서 5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까지 교신이 가능했다. 1966년 7월 8일 이후에는 ‘대경호’가 이런 통신망을 이용해 빈배로 돌아오거나, 위장 화물(데비아 옷감 10동치, 세면비)로 부산항을 드나드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일본과의 유착, 그리고 구조적 문제
이정기의 세력이 이토록 확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의 방관과 묵인이 있었다. 대마도 세관이나 입국관리출장소는 밀수선원들의 가짜 선원수첩을 그대로 인정해주며, 5톤짜리 밀수선을 무역선으로 등록해 출항 수속을 공식적으로 처리해주었다. 이로 인해 사실상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무너진 채, 밀수는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된 것처럼 진행되었다.
실제로 일본은 밀수꾼들에게 무역선 자격을 부여하는 대신, 밀수로 들어온 외화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합법적인 어선 수출을 거부하면서도 밀수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는 이중적 태도였다. 당시 수사반 관계자들은 “일본이 이정기 같은 범죄인을 사주하여 우리 정부를 곤란하게 만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정기 밀수 조직의 위력과 파장
이정기 일당의 밀수 방식은 합법 선박과 달리 전투적이고 대담했다. 쾌속선으로 2시간 만에 부산 연해에 도착할 수 있었고, 조직적으로는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했다. 밀수품 처리 속도가 빨라 적발이 어려웠고, 부산 영도의 재정 기반에서 국내 유통망까지 순식간에 연결되었다.
그 결과, 1956년까지만 해도 1년 평균 8억 원(일화) 수준이던 대마도의 대한 밀수 수출은 1960년에는 최고 10억 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에는 1억 원까지 줄었으나, 1964년 다시 3억 원대로 반등했고, 1965~66년 합동수사반이 본격적으로 투입되기 전까지는 급증세를 보였다.
##밀수 합동수사반과 이정기
1965년 한국 정부는 대규모 밀수 단속을 위해 밀수합동수사반을 발족시켰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반은 전례 없는 강도의 단속을 펼쳤고, 특히 특공대 밀수 조직을 겨냥했다.
1966년부터는 주후쿠오카 한국총영사관이 영사를 이즈하라에 상주시키며 밀수 근절 작전을 본격화했다. 한때 월평균 10척에 달하던 대마도발 밀수선은 1968년 6월에는 월 3척 정도로 감소했다. 실제로 부산세관 감시선이 금영호를 나포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밀수 문제는 여전히 심각했고, 대마도 이즈하라항을 중심으로 한 밀수 경제는 여전히 한일 간의 갈등의 핵심으로 남아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단속 강화로 생계가 흔들리자 반발했다. 일본 현지 출신 사회당 중의원은 국회에서 “입관 직원이 무역을 못하게 하는 것은 원권이다. 한국 영사가 불법으로 무역선을 파괴하는데 정부는 왜 조치를 하지 않느냐”라고 발언했다. 이 문제는 세관이나 입관에서 오랜 기간 묵인해온 관행 탓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실제로 1967년 한 해 동안만 밀수 총액은 15억 원, 많을 때는 30척 이상의 밀수선이 입항하며 연간 20억 원(일화)을 넘는 규모였다. 한 척에 3~4명이 승선해 밤에 출항해 한국 연안에 도착, 새벽녘 고기잡이 배를 가장하며 들어오는 수법이었다. 밀수선은 달빛이나 푸른 새벽빛을 노려 은밀히 부산항으로 진입했고, 현지에서는 밀수꾼들이 양륙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부산세관과 외교 채널을 총동원했다. 후쿠오카 총영사관 정문순 총영사는 대마도 내 밀무역 대리점들을 직접 접촉하고, 일본 측의 협조를 요청했다. 밀무역 대리점은 일소흥업, 평화무역, 야마다 상회 등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업체였으며, 이정기는 이들과 긴밀히 연결돼 밀수품을 공급받았다.
##성명 발표와 밀수왕의 결별
1968년 11월 29일, 이정기와 김의경, 오종옥 등 12명은 부산세관장 앞으로 성명서를 제출했다. 성명서는 이튿날 보도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성명은 “밀무역과 결별하면서”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쓰시마를 거점으로 한 밀무역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앞으로는 조국과 가족에게 속죄하는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우리는 이 시간부로 조국을 위해 속죄함과 아울러 참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재출발할 것을 맹세한다”는 대목이 강조되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제시됐다. 성명서에는 “12월 1일 이후 쓰시마에 입항하는 밀수선은 우리들이 직접 퇴거시키겠다”는 다짐이 담겼고, “우리 힘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정부 관계 기관과 협조하여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적극 투쟁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단순한 사과문이 아니라 밀수 조직 내부에서 스스로 근절을 약속한 실천 계획이었다.
이정기는 같은 해 11월 27일, 동거 중이던 일본인 여성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같은 의지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야마다 상회’를 비롯해 오종옥이 운영하던 ‘평화무역’, 김의경이 담당하던 밀무역 대리점 등 모든 사업체를 정리했다고 전하며, 현재는 후쿠오카에서 ‘후꾸오까 로데나’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알렸다. 편지 속에는 “완전히 손을 떼고 정식 무역업에만 종사하겠다”는 결심이 담겨 있었다.
이로써 한때 대마도와 부산을 연결하며 불야성을 이뤘던 밀수 조직은 자진 해체를 선언했고, 이정기를 정점으로 이어진 ‘밀수왕’의 시대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연표
1954년 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 밀수기지로 등장
6·25이후 휴전에 따라 소형선박에 의한 탄피, 잉곳, 해초 등의 대일밀수출 기지로 등장
1956년 밀수출에서 밀수입으로 전환
6·25전쟁에 인한 특수붐에 편승한 전후 일본산업의 재건으로 화장품류, 직물류 등 사치품을 미수입
1959년 5월 대일통상 중단조치로 밀수출입이 급증, 최전성기
연간 밀수선 1,300척, 밀수입액 약 10억원 추산. 日 이즈하라(嚴原)항에 밀무역 소개상사 山田商會외 22개 회사. 남해안의 부산, 마산, 여수, 목포세관 등에서는 남해안 일대를 몰래 활동하는 특공대 밀수선의 해상 봉쇄작전 전개
1959년 11월 여수세관 감시선 안양호 해상감시중 침몰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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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요약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3) 심리 분석, 프로파일링을 시도했습니다.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자의 심리, 사건을 분석했습니다. 모든 사건에는 있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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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범죄사료집>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사건들이 있습니다. 물론 최초로 공개되는 사건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문과 자료에 기록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많다는 점을, 꼼꼼하게 사료를 읽어가며 깨달았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은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들을 발굴하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이 자료로 범죄학 공부를 해도 좋고(경찰 관계자도 구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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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나 범죄물 덕후라면 읽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후원자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질문과 답변
Q. 왜 노션 자료집은 가격을 많이 내렸나요?
A.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내린 게 아닙니다. 기존 PDF 자료집에는 짤막한 단신 사건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노션 자료집에서는 단신 사건보다는 아직 밝혀지지 않으나 주목할 사건, 주요 사건 등에 집중했습니다. 즉, 기존 자료집에 있던 사건들 중에 짧은 사건들은 제외하고 담았습니다.
2000년까지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에는 700건이 넘는 사건들이 담겨 있는데, 사건의 형태나 내용이 엇비슷한 사건들을 제외해 노션 자료집에 담을 예정입니다.
기존에 담지 못한 사건을 추가했으며, 사건마다 내용을 보다 쉽게 정리했습니다.
Q. 자료집의 내용은 그대로인가요?
A. 네, 기존 전자책 내용에서 오히려 추가가 됩니다. 다만, 내용이 아주 많이 빈약한 단신 사건은 삭제 예정입니다. 처음 자료를 모을 때는, 짧은 사건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사건의 특징 중 하나가 내용이 비슷해서 중복된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다만, 권수는 변경됩니다. 19545년부터 1990년까지의 범죄가 현재 8권에 담겨 있습니다. 2000년까지의 범죄를 추가해, 이 내용들을 3권 내외로 합권하려고 합니다.
개정증보판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권 합본호에 대한 구성입니다.
1권: 1945-1980
2권: 1981-1990
3권: 1991-2000
1권으로 합본할 1945-1980년 범죄는 원래 900페이지 분량입니다.
다만 1945년부터 1970년까지의 범죄는 단신(짤막한 사건)이 많고, 살인강도, 외딴집 살인 등 비슷한 사건이 많습니다. 그 부분을 줄이고, 폰트 사이즈 변경, 조판 수정 등으로 750페이지 내외로 만들 예정입니다.
2권으로 합본할 1981-1990년 범죄는 원래 780페이지 분량입니다.
이 사건도 짤막한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정리해서 700페이지 내외로 만들 예정입니다.
3권 1991-2000년 범죄도 아마 2권과 비슷한 분량이 나올 것 같습니다.
Q. 이번에도 종이책은 하지 않으시나요?
A.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작업 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권수가 많고, 분량이 많아서 종이값, 제작비 등이 올라갔고, 수수료, 인건비 등이 나가고나니… 후원금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모든 계획이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잠시 쉬어갑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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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범죄사료집>(1945-2000) 전 3권 합본 개정증보판의 본문 디자인은 새 판형에 맞게 변경됩니다.
한국 범죄사건 아카이브 GPT
“사건을 기록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사회적 교훈을 남기다.”
대한민국 범죄 아카이브 GPT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수많은 범죄 사건을 접합니다.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히고 맙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며, 사회 전체에도 반드시 남겨야 할 교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 수사, 재판, 사회적 파장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 GPTs 프로젝트를 시작했을까요?
처음에는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PDF를 읽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수백 페이지 속에서 원하는 사건을 찾고, 흐름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언제 시작됐는지, 수사 과정의 전환점은 무엇이었는지, 판결 이후는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선 방대한 기록을 직접 뒤져야 했습니다.
그때 문득 떠올렸습니다.
“사건 기록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해주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 고민 끝에, 대한민국 범죄 아카이브 GPT가 탄생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자료집(PDF)은 ‘기록 보관소’라면, 아카이브 GPT는 그 기록 속 길을 안내하는 ‘큐레이터’입니다.
PDF: 방대한 원문과 전문적 기록 → 사용자가 직접 찾아 읽어야 함
GPT: 핵심을 구조화(사건 요약 → 전개 → 분석) → 질문만 하면 맥락 있는 답변 제공
단순한 팩트 모음이 아니라, 프로파일링과 사회적 배경 분석까지 함께 제시합니다.
정적인 자료가 아니라, 어떤 질문에도 새로운 맥락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입니다.
아카이브 GPT가 제공하는 것
사건 요약 – 사건명, 일시, 유형, 한 줄 요약
사건 전개 – 발생 → 수사 → 재판 → 사회 반응까지 흐름
분석 – 범인의 심리, 사회적 배경, 범죄 수법, 사건의 의미
✅ 왜 믿을 수 있나요?
<대한민국 범죄사료집>과 공적 기록을 최우선으로 활용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추측하지 않고 “사료에 없다”고 명시
민감한 사건은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중립적이고 윤리적인 서술 유지
아크플롯의 바람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건 모음”이 아닙니다.
연구자와 언론인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되고,
일반인에게는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교양 콘텐츠가 되며,
사회 전체에는 기억과 성찰을 위한 자산이 되고자 합니다.
서포터와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아카이브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이 쌓일수록 그 가치가 커집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첫걸음입니다.
여러분의 후원이 모여 더 많은 사건이 기록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기록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사건을 잊지 않고, 기록을 남기고, 교훈을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시도.”
그 여정을 지금, 서포터 여러분과 함께 시작하고 싶습니다.

무료증정 리워드 소개

***PDF 자료입니다.
요즘 작업을 하다가 더욱 신경 써서 작업하는 부분은 '물가'입니다. 물가상승률로만 계산하면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월급과 쌀 한 가마니 가격, 시장 물가 등등. 그것을 알아야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이번 신규 자료집에서는 물가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쓸까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드려요.
1945년~1990년까지의 생활물가를 기록한 자료 PDF를 드립니다. 그 시대 공무원 봉급, 노동자의 월급, 쌀 한 가마니 가격, 버스 요금, 공공요금 등등을 기록해서 서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예정입니다.
아시다시피 분량은 많지는 않을 예정입니다. 그래도 한 눈에 파악하기 쉽게 표를 만들거나 연도 순으로 기록을 하려고 합니다.
그 나라를 알려면 시장을 가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그 시대를 알려면 시장을 가봐야죠.
이 자료를 어떤 일에 써먹을까요?
어떤 도둑이 88년에 50만 원을 훔쳤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이 당시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소비자물가지수로 이 돈이 현재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계산을 해주는 곳이 있어요. 'CPI소비자물가지수'라는 곳에 가면 화폐가치 계산을 해줍니다.

88년 물가보다 3.328배 상승했군요. 이 배수를 이용하여 화폐가치를 계산해보면 현재 가치 160만 원이 넘는 돈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그 정도의 돈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을 알기 위해 당시 기사를 찾아봅니다. 당시 사람들 봉급이며 월급이 얼마였고, 얼마짜리 집에서 살았는지 알면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88년도에 서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독자투고 기사를 하나 찾았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전남도지사 공관 대통령 전용실의 쓰레기통 한개가 17만5천원이라고한다. 삼 년째 봉제공장에 근무하고있는 나의 월급은 의료보험, 감근세, 주민세, 방위세, 식대를 제하고 손에 쥐는게 16만8천원 정도가 된다.
그것도 결근이나 지각, 외출, 조퇴를 하면 시간으로 따져 월급에서 빼고 있다.
잔업이나 철야를 해도 월급제라는 명목아래 수당이 더 붙는 것도 없다. 한 겨울 이라고 철야를 하게되면 차디찬 공장바닥에서 잠을 자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각 자 부담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
봉제공장 3년차의 월급이 16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당시 50만 원은, 우리가 현재 160만 원을 생각하는 금액보다 엄청나게 큰 돈이었죠.
집값은 어땠을까요? 1988년 아파트 매매가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서초동, 대치, 개포동의 아파트 매매가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은마아파트 31평형이 당시 5천 3백 만원에서 6천 4백만 원까지 시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은마아파트 현재 시세가 23억 원이 넘네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때 샀으면....' '그 시대 사람들은 정말 좋았겠다...'
그런데 당시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서울의 아파트는 현재 우리가 서울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큰 꿈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물가 자료집'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게끔 하려고 합니다.
물론 창작을 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죠. 디테일하게 그 시대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 선물 또한 작업을 하며, '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떠올린 기획입니다. 예전부터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범죄 사료에 집중하다가 많이 챙기지를 못해서(물론 사료집 안에도 들어가 있지만, 더 디테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따로 준비해봤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세계연쇄살인연대표.
1901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연쇄살인자의 사진과 간략한 범죄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국내에 알려진 살인자도 있고, 해외에서만 자료를 구할 수 있는 살인자도 있습니다.
세계의 연쇄살인자들의 정보나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어떤 시기에 어떤 살인자들이 활동했는지 한 눈에 파악하는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대표를 만들었는데요.
한 서포터 분께서 문의를 해오셨어요. 이 범죄자들이 사료집에 있는지에 대해서요.
물론 기획 자체가 다르기에 세계의 범죄자 이야기가 사료집에 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연대표를 보고 자료를 찾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0명 정도의 연쇄살인자를 골라 그들의 자료와 이야기를 담은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국내 자료와 해외 자료를 찾아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이를테면, '요크셔의 칼잡이'로 알려진 피터 서트클리프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요?
그는 1946년 6월 2일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1975년 7월부터 5년에 걸쳐 13명을 살해했습니다. 요크셔 리퍼로 불렸는데, 이 사건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그를 요크셔 칼잡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사건을 담은 글 중에 당시 우리나라 언론이 어떻게 이야기를 담았는지 공개된 글을 없습니다.
1980년 11월 21일 모 신문에 <살인마 13번째 범행, 영' 칼잡이' 경찰 조롱>이라는 기사가 올라옵니다. 내용을 한번 볼까요? 당시 기사의 생생함을 위해 띄어쓰기 정도만 수정했습니다. 범인의 가장 마지막 범죄가 담겨 있습니다.
영국의 가장 악명 높은 살인마인 「요크셔 칼잡이」 가 최근 13번째 범행을 저질러 20세된 여자 어학도 「재클린힐」 양을 살해.
「힐」 양의 시체는 영국 북부 직물도시 「리즈」 의 한 슈퍼마케트 옆 쓰레기하치장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도시는 「요크셔 칼잡이」 가 지난 75년 「원마 매캔」 이라는 매춘부를 처음으로 살해했던곳.
2백50명의 「요크셔 칼잡이』 체포특수기동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한 경찰간부 는 「요크셔 칼잡이』 가 체포되지 않는 한 안전한 여인은 하나도 없다"고 경고하고 여인들은 절대로 혼자 외출하지 말라고 충고.
이 기사 이후로 범인이 잡히고, 법정에서 자백하고, 어떻게 범행을 회피하고 등등의 기사가 1981년에 나왔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현장감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미 공개되어 있는 자료는 물론, 당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자료까지 찾아 10명의 연쇄살인자의 이야기를 써서 여러분께 보내드립니다. ***PDF 자료입니다.
리워드
90,000 원
[리부트/신규/슈퍼 얼리버드] <1945-2000> 범죄의 재구성 노션 세트(노션, GPTs)
①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노션 자료집
② 대한민국 범죄사건 아카이브 GPT
110,000 원
[리부트/신규/울트라 얼리버드] <1945-2000> 범죄의 재구성 PDF 세트(PDF, GPTs)
①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PDF
· 1945-1980 범죄사료집(PDF)
· 1981-1990 범죄사료집(PDF)
· 1991-2000 범죄사료집(PDF)
② 대한민국 범죄사건 아카이브 GPT
120,000 원
[리부트/신규/울트라 얼리버드] <1945-2000> 범죄의 재구성 풀세트(노션, PDF, GPTs)
①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PDF
· 1945-1980 범죄사료집(PDF)
· 1981-1990 범죄사료집(PDF)
· 1991-2000 범죄사료집(PDF)
②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노션 자료집
③ 대한민국 범죄사건 아카이브 GPT
150,000 원
[리부트/신규] <1945-2000> 범죄의 재구성 풀세트(노션, PDF, GPTs)
①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PDF
· 1945-1980 범죄사료집(PDF)
· 1981-1990 범죄사료집(PDF)
· 1991-2000 범죄사료집(PDF)
② 1945~2000년도 대한민국 범죄사료집 (총 3권) 노션 자료집
③ 대한민국 범죄사건 아카이브 GPT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10년 넘게 문학 편집자, 특히 소설 편집자로 일했습니다. 소설가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이런 사건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그럴 때는 제가 쓰고 싶은 소재를 슬쩍 숨기고 소설가들과 과거 범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저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겠다.’
그런데 처음부터 막혔습니다. 어떤 소재를,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부터 막혀서 오랜 시간, ‘쓸 거리’를 찾아야 했습니다.
사실 이 책은 훗날 제가 필요해서 만들었습니다. 좋은 소재, 좋은 모티브를 찾아 메모를 해놔도 정작 정리가 되지 않아 잊히기 일쑤였습니다.
주변에 아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책 있으면 읽을 거야?”
“당연하지. 필요해.”
그래서 더 많은 창작자와 더 많은 독자에게 소스를 제공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범죄물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기존의 창작물이나 범죄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사건을 찾을 수가 있고, 창작자라면 이 책에서 모티브나 소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메이커 소개

안녕하세요. 1인 기업 '아크플롯'의 대표 B아크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는 10년 넘는 시간 문학 편집자로 살았습니다. 그 일에 지쳐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4년 전부터는 다른 분야인 경제경영, 인문 등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군요.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드라마, 영화, 소설, 다큐멘터리, 평전, 르포르타주 등 내러티브를 만드는 일을 하기로 말이지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자본금도 없이 시작하는 1인 출판사에 누가 원고를 맡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밤낮 없이 매달린 프로젝트가 이 <대한민국 범죄사료집>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정말이지 영혼을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많은 충격적인 범죄를 수집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우울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더 힘내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아크플롯은 여러분이 밤새 읽을 수 있는, 그러한 내러티브를 차곡차곡 제공하겠습니다.

와디즈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
출판사에서 일하는 동안 저는 기존 도서 시장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첫째, 그 시장은 자본이 있는 출판사가 유리합니다. 좋은 저자와 좋은 인력, 막대한 마케팅. 그러한 회사일수록 매출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창의력이 있어야 좋은 기획을 하는데, 그래야 돈을 버는데, 현실은... 베스트셀러 작가를 먼저 찾게 됩니다.
둘째, 아무리 하고 싶은 기획이 있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소수의 독자가 있더라도 충분히 책을 낼 수 있는데, 어느새 손익계산을 먼저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10년을 넘게 버티다가 결국 몸도 마음도 끔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아크플롯'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실 분을 찾아 와디즈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범죄사료집>과 <세계 연쇄살인 연대표><주요 사건 타임라인> 등등. 제가 진심을 다한 이 프로젝트, 출판사에 있을 때 기획했다면 아마 회의에 올리지도 못했겠지요. 이 프로젝트는 제가 만든 최고의 기획이라고 자부합니다. 베스트셀러를 기획하고 편집했을 때보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원고를 마감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서포터 여러분에게도 이 프로젝트를 보여 드리고,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서포터 여러분이 보내주신 성공금은 이 프로젝트 진행비와 아크플롯의 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쓰입니다.
아크플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