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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떡볶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하교 후 학창시절 우리를 키운 음식,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식, 유년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가장 맛있는 음식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단연 떡볶이다. 떡볶이는 누군가에게는 지금은 없어져버린 공간을, 또 어떤 이에게는 이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나의 '영분식 떡볶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영분식'이라는 분식집이 있었다. 학교 앞 유일한 분식집이기도 했고 초등학생의 입맛과 지갑 사정을 저격하여 달고 저렴했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넘치는 나이, 그래서 지금처럼 폭염이나 폭우에 잘 휘둘리지 않는 나이의 초등학생들로 교문이 열리는 날에는 분식집은 언제나 문전성시였다. 자리가 모자라 대부분 가게 밖에서 스탠딩파티처럼 접시를 들고 떡볶이를 먹었고, 교문 밖 진짜 네트워킹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얼굴이 또렷하게 생각나는 분식집 아줌마는 (지금은 찾기 힘든) 연두색 바탕에 흰색 점들이 박힌 플라스틱 접시에 (설거지하기 좋게) 얇은 비닐을 끼워 똑같은 개수의 떡볶이를 귀신같이 담아 200원의 행복을 쉴새없이 날랐다. 물엿에 한참을 절여 불량스럽게 단 영분식 떡볶이를 집에서도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졸랐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건강한 맛의 떡볶이였다. 엄마도 못 만드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변치 않을 것 같던 입맛이 달라진다. 달디단 영분식 떡볶이를 먹던 초등학생은 자라고 또 자라서 벌칙에 가까울 정도로 매운 떡볶이에 맥주 한 잔 걸치며 그날의 노고를 땀과 함께 흘려 보낸다. 메뉴판에 짜장떡볶이, 차돌박이 떡볶이, 크림떡볶이 등 온갖 다채로운 소스의 떡볶이들이 난무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럼에도 가끔씩 친구들과 비를 맞아가며 먹던 영분식 떡볶이가 그립다.


우리 모두의 '홍군아 떡볶이'

아아, 잠깐. 떡볶이에 담긴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이렇게 길게 하려고 한 것도 절대 아니었다. 추억의 물꼬를 트는데 떡볶이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 지난 삼월 와디즈에서 '홍군아 떡볶이'라는 떡볶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애기떡'이라 불리는 쌀떡과 매콤/궁중떡볶이 소스, 야채 등 재료가 패키징되어 집에서 바로 끓이기만 하면 완성되는 떡볶이가 리워드로 제공되었다. 현재까지도 유일한 떡볶이 프로젝트였고, 맛은 대단했다. 굵은 가래떡을 댕강댕강 잘라 만드는 보편적인 쌀 떡볶이는 씹다보면 떡볶이를 먹고 있다기보다는 떡을 먹는 느낌이 들고 지치기까지 한다. 홍군아 떡볶이 메이커가 3년을 고스란히 바쳐 만들었다는 구름모양의 '애기떡'은 쌀떡으로 쫄깃하고 부드러운 것이 일품이다. 밀떡이 진리를 외쳤던 밀떡 매니아들의 공식을 처참하게, 하지만 기분좋게 부수는 맛이었다.  

주로 혼자 혹은 가족들과 1회 먹을 양의 떡볶이를 펀딩했던 와디즈 직원들은 "많이 펀딩해서 쟁여두고 먹어야했다."며 지구 맨틀까지 치는 후회를 했다. 프로젝트 앵콜 요청의 민심이 들끓었는데 이는 원성에 가까울 정도였다. 이는 일반 서포터들도 매한가지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제 떡볶이는 홍군아 떡볶이와 홍군아 떡볶이가 아닌 떡볶이로 나뉜다." "이제 다른 떡볶이는 입에 대지도 못한다." 며 비통한 데스티니를 호소함과 동시에 킹갓떡이라며 홍군아 떡볶이를 찬양했다.


그리고 열아홉 '홍연우'

프로젝트 제목 '홍군아 떡볶이'만 보고 처음에는 홍씨성을 가진 성인 남자 메이커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홍연우라는 열아홉 소녀가 친오빠가 시작했던 떡볶이가게 '홍군아 떡볶이'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홍군아 떡볶이 프로젝트 스토리에 홍연우 메이커가 떡볶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의 과정이 정말 상세하게 잘 쓰여져 있다. 남의 일기장만큼 몰입감이 대단한 장르가 또 없는데 이 스토리가 그렇다.

학교를 관두고 떡볶이 장사를 하던 연우의 오빠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중간중간 문닫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연우는 부모님의 한숨으로 범벅된 가게를 오빠 대신 지키고 말없이 떡을 뽑았다. 쌀이 좋고, 쌀로 만든 떡이 좋고, 쌀떡으로 만든 떡볶이가 좋았다. 중학교 3학년 시월의 어느 가을날, 연우는 떡볶이를 잘 만들고 싶다는 꽤 단단한 마음으로 학교를 나왔다. 어른들이 만든 길을 벗어나 함께 걸어가던 친구들과 다른 방향과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교무실 안이고 밖이고 사람들은 이런말 저런말들을 했다. 주로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말들이었다. 부모님 역시 어린 나이에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가 포기한 장남의 뒤를 똑같이 밟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했다.

어른들의 노파심 속에서 묵묵하게 밀떡보다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쌀떡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가게에서 쌀떡을 연구했다. 그런 연우를 보면서 누군가는 떡볶이 장사를 하고 싶으면 떡을 사서 하면 되지 않냐고 미련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떡으로는 장사하고 싶지 않았다. 가래떡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있더라도 잘 알려주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 부딪쳐야 했다. 품종별 쌀의 성분과 발효과정, 수분량 등 쫄깃한 밀떡의 식감을 쌀에서 만들기 위한 3년의 시간 끝, 드디어 연우가 바라던 홍군아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이제 떡은 연우의 오랜 단짝이자 애증의 연인이기도 하고 놓을 수 없는 가족이 되었다. 

▶ 1,000만원의 기적... 학교 대신 떡에 모든 걸 건 19살 사장님


1차 프로젝트가 끝난 지 한참이나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친애한다. 친애하는 이유를 사심을 듬뿍담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자면 

하나. 세상 모든 극찬의 표현들은 다 나열하게되는 홍군아 떡볶이는 마치 가창력 좋은 사람이 담백하게 부르는 노래 같다는 것
둘. 떡의 가치와 장사의 매력에 빠진 열여섯 소녀가 학교 밖 작은 가게에서 자기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삼년동안 부단히 노력했고 끝내는 이루었다는 것
. 떡볶이를 만들 듯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사람들과 진심을 다해 소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면서, 대견하다고 안아주고 싶었다. 프로젝트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생각들뿐 아니라 프로젝트가 끝난 후 변화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듣고 싶었다. 새 작업장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녀를 찾아갔다.  

떡과 장사의 매력에 빠진 떡쟁이로서의 삶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떡과 장사의 매력에 빠지면서 떡쟁이로서의 삶을 살게 된, 지금은 '라이스블록' 사업가로성장해가고 있는 열아홉 홍연우입니다. 1차 프로젝트가 (2017.3.7~4.9) 끝나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작업장 공사와 법인 설립,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한 건 여러 매장 돌아다니면서 샘플 떡볶이를 들고가서 소개하는 거였죠. 사람 만나는 일을 가장 많이 했어요. 오늘도 새벽 다섯시에 가락시장에 미팅이 있어서 다녀왔어요. 지난 일주일에는 계속 밤새가면서 떡 만들고 납품하는 일을 했어요. 저 혼자로는 작업량이 많아서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셨고요.

(홍연우 메이커의 부모님은 작업장 근처에서 치킨집을 운영하신다. 치킨집과 작업장을 왔다갔다하며 딸을 도왔다)


1차 펀딩에참여하시고 떡볶이를 드신 서포터분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신 말씀은 "이런 떡은 처음 먹어본다"는 거였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렇다, 홍군아 떡볶이는 한입 베어먹는 순간 입안에서 부드러운 쫄깃함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게 밀떡인지 쌀 떡인지 중요하지 않다. 얼른 떡볶이를 하나 더 입안에 넣고 싶다는 열망만 있을 뿐)

처음에는 오빠가 떡볶이장사를 시작했는데 얼마 안 되어서 그냥 가게를 나가버렸어요. 2013년 10월 25일, 학교에 마지막으로 등교했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죠. 저는 그걸 수습하랴 저만의 떡을 만드랴 정신이 없었는데... 아, 너무 이야기가 많아서 어떻게 설명해야 될 지 잘 모르겠어요.

(학교를 관둔다는 것, 어쩌면 인생에 있어 중대한 결정이라면 중대한 결정일텐데. 어린 나이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루 아침에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을까 궁금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 끝에 내린 결심들도 날씨처럼 어떤 날은 흔들리기도 하고 때론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데, 그런 날들은 없었을까?) 

오히려 그런 결심은 한번에 하는 편이에요. 오히려 부모님이 고민을 많이 하신 편이에요. 학교를 그만두고 한달 정도는 학교에 다시 가고 싶었어요. 이른 아침,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는데 선생님들은 친구들이 안 좋은 영향을 받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힘든 이유도, 행복한 이유도
모두 떡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제일 힘들었던 때는 떡 만드는게 제일 힘들었어요. 말로는 쉬운 일인데 막상 하려니 막막하고 도움을 요청할 데도 없고 혼자 알아가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떡 말고 딱히 힘든 점은 없었어요. 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주위에서 "너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편견이 많았어요. '아, 다 그만두고 친구들처럼,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야하나? 나만 만족하는 꿈은 아닌가?' 고민도 했죠. 그럴 땐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요. 그리고 생각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다가 계속 쉬면 혹시나 놓쳐 버리게 될까봐 털고 다시 일어나요.

(보편적인 부모라면 방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린 딸 자식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때도 부모님은 걱정을 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홍연우 메이커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방관은 아니었다. 믿음과 사랑에서 나오는 기다림이었다)

0.1g에도 맛이 달라지는 소스뿐 아니라 떡볶이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에 오랜 시간 예민하게 연구했어요. 가장 보람있던 순간은 최근에 만든 애기떡을 사람들이 찾을 때, 마치 엄마가 된 것 같은 보람을 느꼈어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까 떡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해요.


떡으로서의 가치, 소스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스며든 떡볶이가 좋은 떡볶이


홍군아 매콤떡볶이


홍군아 궁중떡볶이

저도 아직 알아가는 과정이라 떡볶이는 이거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말씀드리자면 떡으로서의 가치, 소스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스며들어 있어야 좋은 떡볶이라 생각해요. 실은 2년 전에 떡볶이는 어느 정도만 하고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떡볶이를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거예요. 그래서 뭐 어차피 떡볶이도 요린데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떡볶이를 하고 있어요. 쌀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고 이쪽으로 사업을 계속 하고 싶어서 '라이스블록'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지금 당장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할 의향이 있어요.

(철저한 보안을 약속했음에도 차디찬 글라스 같은 홍연우 메이커는 빠알간 떡볶이 비밀을 단호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장사를 하던 저에게
세상을 알려 준 친구, 와디즈

리워드 떡볶이, 식혜와 함께 온 편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드셔달라는 메이커 홍연우의 부탁이 적혀 있었다.

제가 실수로 떡볶이 한 팩을 누락해서 배송을 받으신 서포터분이 장문의 메일을 보냈어요. 너무나 죄송한 마음에 빠진 수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또 장문의 메일이 왔어요. 이번엔 추가 배송분이 너무 많다, 이번에도 잘못 보냈는데 추가 배송된 부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테니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요. 제가 정말 더 드리고 싶어 보낸 것이라며 따뜻한 실랑이 끝에 마무리 되었어요.

(아낌없이 주는 태양열 때문에 서포터와의 떡피소드들이 하나같이 따뜻하다 못해 그날의 직사광선처럼 뜨거웠다)

크라우드펀딩은 부모님이 추천해주셔서 하게 되었어요. 이전에 다른 플랫폼에서도 했었는데 감흥보다는 이런 거구나 알게 되는 수준이었어요. 와디즈를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펀딩 시작 전, 같이 손잡아주면서 눈물을 흘렸던 와디즈 직원분들은 물론이고 정말 좋은 서포터분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혼자만의 세계에서 장사를 하던 저에게 와디즈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이어주고 세상을 알려 준 친구죠.

곧 와디즈에서 오픈하는 2차 펀딩은 1차 서포터분들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받은 의견들을 반영해서 개선했어요. 떡에 비해 부족한 소스는 직접 만든 유기농 현미 조청을 사용하고 제조 방법보다 바꿨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 두고 먹고 싶다는 의견을 반영해 떡 양도 늘리고 보관기간도 늘렸죠.

홍군아 떡볶이 2차 프로젝트


굳세어라, 홍연우

마냥 어리고 여리기만 할 것 같은 열아홉 소녀, 홍연우 메이커는 연신 수줍은 미소만 짓다가도 떡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에 총기와 생기가 번뜩하고 가동되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동자가 투명한 바다 위 햇빛 같았고 이내 내 마음을 떡처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굳세다
1. 힘차고 튼튼하다.
2.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아가는 힘이 있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녀의 침묵 속에서도 절망 속에서 홀로 일어나고 희망 속에서 홀로 기뻐하면서 자랐을 마음의 키와 근육이 느껴졌다. 드라마 제목처럼 거리가 멀게 느껴진 '굳세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의 날들이 무수하게 많은 그녀가 통과할 것들에는 지금껏과는 다른 생경한 종류의 절망도 있고 또 희망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그 순간순간을 함께해 줄 수 있다. 우리는 그녀만큼 굳센 서포터니까. 



홍연우 / (주)라이스블록
떡의 가치와 장사의 매력에 빠진 열여섯 소녀는 3년의 즐거운 수행 끝에 원하는 떡볶이를 만든다. 지난 4월, 친해지고 싶은 전학생처럼 찾아온 홍군아 떡볶이는 330명의 서포터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1,100만원으로 펀딩 성공했다. 이런 사랑에 보답하고자 여름 내내 구슬땀을 흘렸고 곧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홍군아 떡볶이 2차 프로젝트
홍연우 페이스북

기획/글 : 차재영
영상/사진 : 신글라라

학창 시절부터 정답보다 매력적 오답을 귀신 같이 잘 찾았습니다. 지금도 그것에 끌리고 집중할 때 행복한 와디즈 차재영입니다. 와디즈에는 이런 매력적 오답인 사람들과 일들이 오늘도 넘실거립니다. 도전의 대소사를 만드는 메이커 곁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을 이어주는 튼튼한 실을 만들고 있습니다.